살아가는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함께한 손자의 첫 산행

leepuco 2010. 11. 3. 20:41

 

  주말인 어제 산에 갔다가 늦게 귀가하니, 오랜만에 손자가 와서 자고 있다. 평소에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겠다고 말했기에, 한숨 자고 일어난 손자에게 내일 산에 가자하니 선뜻 응해 약속을 한다. 그러나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 아빠가 일찍 자기를 데리러 올 것 같아 못가겠다고 한다. 아파트 창으로 보이는 남한산성이 처음가려고 하니, 높게 보였나 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에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 다소 늦은 오전에 손자가 좋아하는 과자, 과일, 음료수 등을 챙겨 배낭을 꾸린다. 남한산성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하리라 예상하고, 어느 곳까지 가서 자리를 깔고 놀다가 하산하려 한다. 초등학교시절 소풍가는 날 기분으로 즐겁게 준비를 한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은 아내도 함께 따라 나선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마천동행 버스로 남한산성 입구까지 간다. 입구(11:20)는 일요일을 맞아 많은 등산객들로 혼잡을 이룬다. 입구를 벗어나서 왼쪽으로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능선을 탄다. 숲속으로 들어 온 손자의 첫 소감은 ‘시원해서 좋다’고 한다. 산에 적응이 안 되고, 신발이 운동화이기에 자꾸 미끄러진다. 그러자 아내가 가지고 온 어른 장갑을 끼워준다.

 


  오르는 동안 오고가는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손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옛날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찾았던 서울대입구에서 삼막사(삼성산)  간 등산로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다. 동행자가 아들, 딸에서 손자로 바뀌어 똑 같은 말을 듣게 되니, 세월이 덧없이 흘러서 감회가 새롭다. 가볍게 생각해 스틱을 가져오지 안했는데, 짚고 가는 것을 보고는 지팡이를 달라한다.

 


  등산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적당히 맞추어 지팡이를 만들어 준다. 오늘 따라 아들이 갑자기 가족 외식을 하자고 해서, 오후 2시까지 집에 도착하기로 한다. 시간에 맞추려고 하니 마음만 바쁘고, 손자의 컨디션이 어떠할지 몰라 산행코스가 그려지지 않는다. 무조건 갈 수 있는 곳 까지 갔다가 하산하기로 한다. 그러나 손자는 가면서 쉬자는 말 한번 없이 잘도 오른다.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 할 때, 숨이 차서 몇 번을 쉬고 올랐던 등산로인데 손자는 힘들지 않은 모양이다. 산행 시작한지 1시간20분만에 연주봉 옹성에 도착(12:40)한다. 산성을 보자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을 하고, 아내는 열심히 역사 공부를 시켜준다. 이후부터는 불조심, 나무, 낙엽, 단풍 등 자연공부를 위한 질문이 계속된다. 성곽을 따라 서문방향 전망대로 온다.

 


  전망대로 오자 청명한 날씨로 멀리는 남산타워, 북한산 백운대, 도봉산 자운봉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 남한산에 왔으니, 다음엔 북한산에 가자고 한다. 가까이 발아래로는 아파 숲과 한강이 지나간다. 할아버지 집 아파트와 자기 집 아파트 찾기에 한동안 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최종 목적지로 정한 서문(12:50, 우익문)에서 성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수어장대와 성곽 길을 좀 더 보여주고 싶었지만, 하산을 시작(12:55)한다. 뜨거운 물인 보온병 3개, 물병 2개, 과일과 음료수 등을 무겁게 짊어만 지고 다녔다. 14시까지 집에 도착해야 하기에 먹을 시간이 없다. 손자에게 산에서의 음식은 맛있다는 것도 알려줘야 하는데 아쉽다. 하산이 어린 손자에게는 더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껴 본다. 바위 너덜길이 어려움을 준다.

 


  하산 중에 곱게 물든 단풍나무는 가까이서도 충분히 가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성불사 위 능선을 이용해 산성에 올랐다가, 호국사자사 방향으로 무사히 하산을 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13:40)하여 산행을 종료하니, 2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손자의 성장과 건강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첫 산행을 계기로 산과 가까이 하며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을 통하여 겸손과 인내 그리고 강한의지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버스가 빨리 오지 않아, 약속시간 때문에 택시를 이용한다. 손자가 엉뚱한 행동을 하자, 택시기사는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면 택시에 두고 내릴 것 이라 말한다. 그 말이 그렇게 싫지 않은 것을 보면, 나이가 든 모양이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소주가 달기만 하다. 오늘 하루 종일 행복하다.

  


                                                         ‘10. 10. 31(일)  남한산성을 오르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