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오랜만에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게 된다. 책의 내용이 황당하게 시작되어 이해가 되지 않아 계속하여 읽기가 어렵다. 환상적인 소설임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어내려 가니, 또 다른 인간의 본능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
운전을 하다 신호 대기 중에 갑자기 실명이 되는 ‘처음 눈먼 사람’부터 급속도로 전염병은 확산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백색 질병’은 앞이 온통 하얗게만 보인다. 안과 의사를 비롯한 각종 직업의 환자와 보호자등이 함께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되면서 비인간적인 생활이 시작된다.
300여명이 수용된 여러 병동은 무기력한 정부의 미온적 대처와 눈이 안 보인다는 절박한 상황이 함께 어우러져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질투와 시기, 폭력과 공포, 본능적인 욕구의 충족 등 여러 사건들이 발생한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까지 악하여 질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정도다.
눈이 멀어 같은 병원에 있으면서, 힘에 의한 깡패들의 난폭한 폭력장면들은 분노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소수에 의해 개별적인 다수가 힘없이 당하고만 있다가, 결국에는 탈출하여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를 통하여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한 지배’라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의사의 병간호를 하다 수용된 의사부인 만이 눈이 멀지 않아 이들과 처음부터 같이하며 모든 역경을 이겨낸다. 모두가 자기만을 믿고 있음을 알고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책임을 끝까지 다한다. 현대 사회의 어려운 역경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 상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병동에서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등장인물 이름도 특이하다. ‘처음 눈먼 사람’, ‘안과의사’, ‘의사부인’, ‘검은색 안경을 쓴 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사팔뜨기 소년’, ‘안과 간호사’등은 수용소를 탈출하여 다시 본인들이 살던 이름 없는 도시로 돌아온다.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가니 다른 눈먼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집을 비워 달라’ 하지 않고, 같이 한곳에서 어울려 지내기로 한다. 어두운 세상에서 나와 서로 신뢰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생활하다보니 하나둘 눈을 떠, 세상을 보게 된다. 마지막 부분의 구절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가 우리자신들을 돌이켜 보게 한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 눈이 먼 남자는 두 손을 눈으로 가져가며 휘저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마치 안개속이나 우유로 가득한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이 머는 건 그런 게 아니오.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말을 하였다. 눈이 멀면 검게 보인다고 하던데. 글쎄, 하지만 나는 모든 게 하얗게 보이는 걸요. 아까 그 여자 말이 맞나 보군. 신경에 문제가 생긴 지도 모르오.
∎ 사람들은 흔히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나온 선과 악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살아남는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은 상당히 일관되고 균형 잡힌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무한한 기간이 포함된다. 물론 그 기간에는 우리가 직접 그 선악을 확인 할 수도 없고, 그 것을 가지고 자축 할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 속담처럼,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인거지. 속담 얘기는 그만 두쇼. 여긴 달라. 여기서는 모들뜨기라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온전치 못할 거야. 내가 보기에는 병실마다 식량을 똑 같이 나누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야. 그럼 모두 만족할 거야.
∎ 그녀는 조금씩 감각을 회복했다. 뱃속에서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몸에 살아 있는 다른 기관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기관들도 틀림없이 존재했지만, 존재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 그래, 그녀의 심장만은 큰북처럼 울려댔다.
∎ 아마 인류는 눈 없어도 살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인류라고 부를 수 없을 거예요. 그 결과는 분명해요. 우리 가운데 누가 우리 자신을 전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죽였어요. (.....) 네, 좌 병동에서 명령하던 깡패를 죽였어요. (.....) 사모님은 우리의 복수를 하려고 죽인 거예요. 여자의 복수는 여자만이 해줄 수 있어요.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