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장산-정읍,추령,정상,8봉종주,벽련암,내장사
2년 전 이때쯤, 당일 산행으로 서래봉 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로 하여 까치봉까지 겨우 가서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지나고 보니 이 산의 정상인 신선봉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늘 함께하여 기회를 엿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공지하는 산악회 당일 코스는 대부분 서래봉 부터 시작한다. 정상 신선봉의 인증 샷을 찍기 위해 무박 산행으로 싱글벙글 산악회를 따라 내장산(內藏山: 763m)을 다시 찾는다.
그동안 3일 연속산행의 후유증과 집안행사로 3주를 쉬었더니, 8봉 종주는 무리라 판단되어 지난번 하산한 까치봉 까지만 가기로 한다. 자정에 신사역을 출발한 버스 2대(약 75명)는 고속도로를 달려 탄천휴게소(1:50~2:10)에 서 쉬어간다. 고개를 올라 추령 주차장(3:30)에 도착하니, 산행대장은 5시까지 잠을 더 자라한다. 각자 행동으로 어수선해 잠을 이룰 수 없어, 옆 좌석 산우와 출입문을 통과(4:17)한다.
주차장 인근에는 약간의 음식점들이 있다. 도로 표지판은 내장산 6km, 정읍 15km이다. 비가 많이 내렸는지 등산로는 미끄럽고, 자욱한 안개는 헤드랜턴 불빛을 흡수해 어둡다. 어설픈 첫 이정표(4:27)에서 산책로가 아닌 산림박물관으로 가면 알바를 한다. 산악회 리본을 겨우 찾아 면한다. 국립공원 표시석이 있는 무명봉(4:45)부터 편안해진 능선(4:53)이다. 유군치(留軍峙, 4:56) 안내판이 반겨준다.
임진왜란 당시 공격해오는 왜군을 이곳에 유인해 크게 물리쳤다 해서 유군치라 한다. 이정표(4:56)를 보니, 다음 목적지인 장군봉까지는 900m이다. 고도를 높이는 통나무 계단(5:19)이 물기를 머금어 미끄럼을 더 한다. 8봉 종주의 첫 번째 봉우리 장군봉(將軍峰, 5:29)에 도착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대장 희묵대사(希默大師)가 이곳에서 승병을 이끌고 활약 했다하여 장군봉이라 부른다.
장군봉까지는 산죽들이 길을 유도하는 육산인 듯했으나, 이후부터는 철 계단(5:55)과 난간이 설치된 칼바위 능선이 시작된다. 설상가상, 어둠과 짙은 안개로 한발 한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봉우리가 붓끝 같다고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하는 두 번째 연자봉(燕子峰, 6:10)에 오른다. 안개가 일부 걷히면서 소나무 위로 약간 기우러진 둥근달(6:11)이 밝게 비춘다. 운치 있는 풍경에 잠시 피로도 잊는다.
봉우리에서 우화정(羽化停)까지 운행되는 케이블카가 있다는데 전혀 볼 수가 없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가을 야유회를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능선을 조금 걸었는데 주위가 어두워 그 추억을 찾아보기 힘들다. 연자봉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여명이 밝아오는 안부(6:31)에서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지그재그 너덜로 경사가 급한 깔딱이다. 세 번째 봉인 정상 신선봉(神仙峰,6:54)에 오른다.
이산의 유래는 원래 영은산(靈隱山)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 하여 내장(內藏)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 안에는 무궁무진한 것이 숨겨져 있다 하여 내장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한다. 헬기장인 넓은 정상에 서니, 일시적으로 안개가 걷히며 멋진 해무를 보여준다. 이정표 아래에서 아침식사(7:00~7:25)를 한다.
신선봉은 이산의 최고봉으로 내장 9봉을 전부 조망할 수 있으며,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고 하여 신선봉이 되었다고 한다. 식사 도중에 일출(7:09)을 보는데, 이미 해는 떠서 구름위로 올라오는 광경이다. 까치봉을 앞에 두고 암릉 구간(7:49)이 다시 시작된다. 백암산 정상인 상왕봉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7:58)가 소둥근재(2km)를 가리키고 있다. 언제 다시 찾는다면 이 코스를 가보고 싶다.
말굽형을 한 9개 봉우리 중에 중앙에 있는 2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네 번째 봉인 까치봉(8:10)에 오른다. 봉우리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까치봉은 신선봉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지난번 하산했던 내장사 가는 이정표(8:13)를 보고 망설인다. 내려가도 산행 종료시간인 14시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는다. 하산지점을 불출봉으로 미루고, 다섯 번째 연지봉(蓮池峰, 8:34)을 찍는다.
전에 못간 구간이 끝났는데도, 기억에 남는 것은 신선봉 정상석 뿐이다. 어두운 밤과 짙은 운무로 한치 앞을 볼 수 없었으니, 인증 샷을 위한 산행이 된 듯싶다. 연지봉은 연꽃 못 봉우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좀처럼 걷히지 않는 안개로 인한 조망의 아쉬움을 조망 안내판(8:34)으로 대신한다. 여섯 번째 봉우리 망해봉(望海峰, 9:00) 큰 바위에 오르면 정읍 시내가 발아래로 보이는데, 오늘은 오를 필요가 없다.
출발 전부터 오랜만에 보는 산행대장과 항상 웃음을 주는 선배 산우를 만나 반가웠는데, 옆자리 산우와 함께 계속 걸으니 외롭지 않고 즐겁다. 지난번 산행 시는 몰랐는데, 능선이 대부분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안전을 유도하는 철 구조물(9:13)들이 많다. 불출봉을 앞에 두고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울창한 산림의 계곡(9:45)이 눈에 들어온다. 불출봉은 경사가 급한 철제 사다리(10:11)로 올라야 한다.
이제는 햇빛과 함께 계곡에는 색깔을 달리하는 단풍(10:13)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커다란 암봉으로 이루어진 일곱 번째 불출봉(佛出峰, 10:14) 전망대에 오르니, 운무로 보지 못한 호남의 금강이라고 하는 내장산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의 조망을 부처가 나타난 모습이라 하여 불출운하(佛出雲河)라고 한다. 전에 들머리로 했던 서래 탐방센터 방향의 저수지(10:15)가 선명하게 보인다.
암봉에 올라서면 최고봉인 신선봉(10:17)을 비롯한 7개 봉우리가 동시에 보인다.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해 가뭄이 계속된다고 전해져 온다. 간밤에 잠을 2시간도 못 잤기 때문인지, 체력은 바닥나고 무릎도 아파 이곳에서 하산을 하고 싶다. 그러나 동행한 산우가 계속 보조를 맞추면서 기다려주니 혼자 내려갈 수 없다. 멀리 보이는 서래봉(10:22)으로 향한다. 제일 힘든 철 계단(10:54)이 시작된다.
바위 절벽인 암봉이 떨어져 있어 가파른 경사의 철 계단을 힘들게 올랐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야하는 힘든 코스이다. 산객들이 많이 올라오는 시간까지 겹쳐 정체가 일어난다. 마지막 여덟 번째 서래봉(西來峰) 아래(11:14)에서 호흡을 조절한다. 암봉의 모양이 마치 농기구인 써래 같다하여 서래봉이라 부른다. 정상서 벽련암, 내장사를 조망(11:23)하며, 떨어진 체력을 보충한다. 하산(11:25)을 서두른다.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 너덜로 험해 조심스럽다. 서래봉 위에 있어야 될 안내판(11:30)에 하산 길에 내려와 있다. 아마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싶다. 능선을 타고가면 아홉 번째인 월영봉(月迎峰, 427m)이 나올 것도 같은데, 이정표(11:40)는 우측 벽련암을 가리키고 있다. 처음 보는 단풍나무 한그루(11:53)가 있어 사진을 찍자, 동행한 산우가 “내려가면 더 멋진 모습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결과는 그 단풍나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석란정지(11:55)는 유림들이 명성황후를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서보단이 있던 곳으로 석란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석란이나 정자는 없다. 지그재그 내려오는 긴 산죽 길(11:56)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혼자라면 처음인 벽련암에 들려 사진 몇 장을 찍을 텐데, 동행하다보니 측면(11:59)에서 찍는다.
벽련암 부터는 편안한 차도(12:02)가 연결되어, 지금까지 각자 배낭 속에 메고 다녔던 막걸리를 꺼내어 뒤 따라오던 일행들과 함께 간단하게 8봉 종주 축배를 든다. 내장사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벽련암 표시석(12:27)과 함께 내장사 일주문(12:28)이 일행들을 반겨준다. 내장사 사찰은 다녀온 바가 있어 들리지 않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어야 할 진입로가 썰렁하다.
다소 늦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로수 단풍나무(12:37)들이 앙상한 가지만 보일 줄은 몰랐다. 동구리 이정표(12:40)를 보니, 상가에서 내장사까지 3.2km 거리가 오늘따라 무척 지루하다. 매표소(12:57)를 통과하는데, 단풍을 보러온 여행객들은 그래도 장사진을 이루며 입장한다. 정읍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있지만, 타지 못한 관광객이 택시에게 물으니 2만원이라 한다.
복잡한 주차장을 헤매다 버스를 겨우 찾아 산행을 종료(13:17)한다. 약 16km의 거리를 9시간 소요되었다. 내장사를 출발(14:05)해, 이안휴게소(15:25~15:45)를 들려 신사역에 무사히 도착(17:30)한다. 함께한 산우의 배려가 종주를 할 수 있게 하여 고맙고, 또한 주관한 산악회에 감사하며, 함께한 산우님! 수고하셨고 즐거웠습니다.
‘11. 11. 12.(토) 내장산 산행을 하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