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어린 시절 추억의 봄 속으로...

leepuco 2013. 5. 17. 12:03

 

  담장에 핀 개나리가 봄의 소식을 알려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간밤에 봄비가 내리더니 벚꽃이 활짝 피었다. 해마다 벚꽃이 이렇게 화사하게 피는 이른 봄에는 옛날 초등학교 시절의 아름답던 교정이 떠오른다. 또한 시골 고향에서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며 산과 들로 힘껏 뛰어다니며 놀던 봄의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한 작은 시골마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교실(단층 목조건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에 벚꽃나무들이 많았다. 수령이 오래된 벚꽃 나무들이 가지가 안보일 정도로 만발하면, 교실 건물 또한 꽃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벚꽃은 그 화사함을 일시에 표출하고는 눈송이처럼 휘날리며 떨어진다. 화려함 후에 느끼는 안쓰러움이다.

 

 

  이후에는 뒷동산에 피는 할미꽃, 진달래꽃, 철쭉꽃이 벚꽃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나물을 캐는 아낙네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봄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캐온 쑥으로 만든 개떡은 향긋한 고향의 맛으로 으뜸이었고, 이를 먹다보면 우리는 봄 소풍을 기다리며 설레게 된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가면서 원족(遠足)의 뜻과 같이 걸어서 멀리 갔다.

 

 

  봄 소풍을 갔던 곳 중에서 가까운 곳부터 당살미, 합덕성당, 망객산(신평), 백송-추사고택(예산), 수덕사(예산)등이 기억난다. 그중에서 제일 잊어지지 않는 소풍은 학교까지의 거리가 먼(4km 정도), 등교 했다가 집 앞으로 다시 와서 갔던 망객산(望客山, 68m)6학년 때 봄 소풍으로 먼 길을 걸어가 1박을 했던 수덕사의 소풍이다.

 

 

  소풍 전날에는 밤새 잠을 설치다가 어머니가 해주는 도시락과 평상시는 전혀 없던 용돈까지 받고는 기뿐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소풍 행렬과 함께 따라오던 이동식 가게는 용돈의 사용처이자 소풍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동반자 이었다. 자그마한 장난감과 과자, 사탕, 삼각형 비닐 음료수 등을 골라서 사는 재미도 그날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맛있는 것 먹고, 신나게 뛰어놀고, 보물찾기도 하다보면 소풍은 끝나고 아쉽게 집으로 향한다. 집에 오면 피곤하여 이른 저녁부터 잠자리에 든다. 소풍이 끝나고 나면 온통 들과 산은 푸른색으로 바뀌면서 보리밭에는 보리와 깜부기가 동시에 나와 열매를 맺는다. 깜부기를 뽑아 친구들과 장난도 하지만, 하교 길에는 이상한 소문으로 겁을 먹고 집에 간다.

 

 

 

  해마다 이시기만 되면, 화창한 봄날 오후에 보리밭에서 이상한 사람이 나와 어린이를 잡아가 해 치면, 자신들의 병을 고친다는 헛소문 때문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봄도 막바지에 도달하면 춘곤증을 느끼게 되고 들에는 모내기가 시작된다. 겨울동안 일하지 않아 게으른 소를 재촉하는 농부의 소리와 함께 논을 갈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후는 온통 동네가 은빛 물결로 바뀌면서 여기저기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며, 강남에 갔던 제비도 돌아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일에 익숙해진 소는 물장난이 재미있는지 첨벙첨벙 발걸음을 가볍게 옮기며 써레질을 한다. 품앗이로 동네 사람들 끼리 모여서, 양쪽 논두렁에서 못줄 잡은 이가 뒤로 이동하여 내리면 표시된 곳에 재빨리 모를 심는다.

 

 

  이때 양쪽에 못줄 잡은 사람과 모심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장단의 소리는 구성지다. 이 소리에 따라 허리를 펴고 숨도 몰아쉬면서, 종일 허리 아픈 것도 잊는다. 이때에 꼭 찾아오는 불청객 거머리는 여성들의 헌 스타킹으로 막아보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흡혈귀가 되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봄의 향수를 느낄 때 마다 그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얼마 전, 어느 한 친구가 졸업 후에 초등학교와 그 주변을 다녀왔느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었다. 고향을 자주 찾기는 하였지만 왜 그렇게 가지를 못했는지 모르겠다. 살기가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내와 최근에 시간을 내어 다녀왔는데, 교정의 벚꽃도 단층의 목조건물도 없어져 옛 추억이 그리웠다.

 

 

 

  요즘에는 소풍가는 어린이들의 행렬도 보기 힘들고, 쑥으로 만든 개떡은 다이어트를 위한 식사대용으로 인기가 많다. 엊그제 한식날 산소를 찾아 쑥을 한 자루 캐 와서, 개떡을 방금 만들어 블로그에도 올려 본다. 보릿고개가 없어져서 인지 보리밭도 주위에서 찾기 힘드니 옛날의 낭만도 점차 사라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위의 환경이 너무나 빨리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해가 갈수록 허전한 마음과 같이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2008. 4. 10. 써 놓았던 글을 정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