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골프와 작은 바람

leepuco 2010. 10. 14. 14:57

 

 이제 온통 푸르른 자연이 옥외 스포츠 시즌임을 알린다. 오래전 이때쯤 오후 거실에서 오수를 즐기려 누워 있을 때, 파란 잔디가 넓게 펼쳐진 필드와 양쪽은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과 주위는 조용한 가운데 가끔 새소리가 들리는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이것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날은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여 연습만 하다가 필드에 처음으로 나가, 머리를 얹은 날이다. 우리 풍습에 결혼하면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의 머리를 얹어준다고 한다. 그 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골프에서도 이 용어가 통용되고 있어, 골퍼들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날이기 때문에 지금도 간혹 그때를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다.

 


  보수적인 회사였기에 다소 늦은 차장시절에 상사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 배운지 3개월여 만에, 골프를 권유한 상사와 함께 서울근교의 명문 골프장에서 머리를 얹었다. 그 날은 공이 잘 맞고 안 맞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 쳤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골프를 치는 한, 머리 얹어준 분은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회사에서 다른 동료나 상사들은 임원이 되기 전에 골프 치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나, 부서 업무 특성상 인정해줘서 열심히 연습했다.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멀어 출근길은 교통 혼잡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일찍 서둘러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제2금융권 실내 연습장에서 출근길에 매일 1시간씩 연습을 했다.

 


  당시에는 주5일제 근무도 아니어서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토요일 오후, 일요일과 공휴일은 골프 스케줄로 채워져 있었다. 한마디로 골프에 푹 빠져있었기에, 아내도 골프에 입문을 시켰다. 흔히 하는 말로 운전과 골프는 초보 때는 아내와 함께하지 말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그 단계를 지나서 서로 열심히 운동하게 되고, 잘 할 수 있게 된다.

 


  골프문화를 서로 이해해줘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임원이 되어서는 참여한 임원 골프대회의 ‘메달리스트’는 대부분 독차지 한다. ‘싱글’패도 몇 개 받고, ‘이글’패까지 받았는데 아직까지 ‘홀인원’패는 없다. 아직도 가끔 골프를 치고 있어 희망을 가져 보지만, 홀인원은 ‘일생에 한번 할까 말까!’라 하는데 큰 기대는 않는다.

 


  골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골프는 부부가 나이 들어서도 함께 즐기기에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아직 혼자만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하라고 권유하고 싶고, 전혀 안하고 있다면 나이는 큰 문제가 안 되니 입문을 서두르라 권하고 싶다. 주위에 보면 연세가 70-80세 되신 어르신들도 걷는데 지장이 없으면 골프를 즐기고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과 라운딩을 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라운딩은 형제, 동생부부, 친구부부, 고향친구와 함께 했을 때이다. 특별히 잊지 못할 라운딩은 명문 골프장에서 존경하는 두 신부님과 함께 한날이다. 업무관계, 회사상사, 동료들과 함께 할 때나, 게임방법에 따라 일정한 금액이 왔다 갔다 할 때는 재미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간에 같은 취미를 두어야 서로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같이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지는 것 같다. 직장에 다닐 때는 연습도 많이 하고 필드에도 자주 나갔지만, 은퇴한 이후에는 힘들다. 아직까지 골프는 대중화된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라운딩 하려면 금전적 지출이 많다. 반면에 수입은 축소되어, 어쩔 수 없이 횟수를 줄이는 방법뿐이 없다.

 


  그래서 골프를 좋아하고 시간 여유가 있는 많은 골퍼들이 가까운 해외로 떠난다. 특히 동남아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서 며칠 동안 하루 한번 라운딩 할 비용이면, 같은 기간 동안 하루 종일 라운딩 할 수 있고, 식사, 숙박은 물론 항공료까지 해결 된다고 해외로 나가기 바쁘다. 대중화를 위해 퍼블릭 골프장 수를 늘리고 세금도 인하 하면 좋으련만 언제 될지 묘연하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중국 ‘하이난’ 여행 시 골프만 치러 온 우리나라 여행객들을 보았다. 얼마나 많이 다녀갔는지, 골프장에서 경기를 보조하는 ‘캐디’들도 대부분 우리나라 말로 한다. 우리 부부는 ‘삼아’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다른 일행과 합류(Join)하여 라운딩을 했었다. 함께한 두 사람은 처남 매부지간이고, 뒤 팀이 가족으로 부모와 동생이라고 한다.

 


  라운딩 하면서 나눈 대화에서 한 가족이 모두 이곳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동생과 처는 아이들이 어려서, 숙소인 호텔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며칠 더 있으면서 관광도 함께 하고, 다른 골프장에서 라운딩도 더 할 예정이라 한다. 내가 늘 생각하고 바라던 장면을 보니, 얼마나 좋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나의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고 하면 아들, 딸, 며느리, 사위와 함께 온 가족 모두가 필드에서 골프를 치는 것이다. 평상시 아이들한테도 이야기 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과 여건이 맞아야 할 것이다. 우선 딸이 결혼을 해야 하고, 그 다음은 모두가 사회생활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골프를 배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골프보다는 등산에 푹 빠져서 주 1~2회 산행을 하고 있다. 아직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어, 부지런히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체력의 한계를 느껴 산에 오르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옛날 같은 열의는 없지만, 작은 바람이 이뤄지는 날을 기대하며 가끔 골프채를 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