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적령기가 지나 안타깝게 하던 딸이 결혼식에 앞서 함(函)이 들어온다. 결혼 일자와 장소가 정해지면서 바쁘기 시작한 혼사준비는 아들 때보다 더 많다. 그 마무리 절차 중 하나인 함은 신랑 측에서 결혼이 성사되어 감사하다는 의미로 채단(采緞)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 신부 측에 보내는 의식이다. 친구들의 함도 수차례 매어보고, 자신이 결혼 때 함이 들어가는 절차도 보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위의 친척들이 축하하러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신랑이 가져오는 함을 정중히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내와 주위 친척들이 절차가 있다고 하니 당황하게 한다. 하나 뿐인 딸의 함 들어오는 절차를 몰라서 소홀히 하려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급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풍습으로 내려오는 절차를 그대로 답습해 보기로 한다. 함을 받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블로그에 올려본다.
아내는 미리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여러 준비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 시간에 맞춰 떡집에서 방금 만든 봉치 떡이 작은 시루 채 배달이 된다. 찹쌀과 통팥을 섞어 시루에 찐 떡을 준비한 상 위에 올려놓는다. 찹쌀은 부부의 금실이 찰떡처럼 평생화목 하라고, 붉은 팥고물은 액운을 물리쳐 달라고, 떡 위의 대추와 밤은 자손이 번창 하라고, 떡을 두 겹 켜켜이 안치하는 것은 부부 한 쌍을 의미한다.
부정한 것을 없앤다는 의미로 어렵게 준비한 바가지를 깨고 들어오라고 현관 앞에 놓는다. 우리가 결혼 할 때의 신랑은 결혼해 아들을 낳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은 친구를 함진아비로 택했다. 함을 지고 가는 길에 흉하고 나쁜 것을 보지 말라고 오징어로 만든 가면을 썼고, 함은 도중에 내려놓지 않고, 신부 집 근처까지 가서「함 사세요~」. 최근에는 신랑혼자 신부 집으로 가져가는 절차를 선호한다고 한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함진아비를 대신한 신랑은 함을 들고, 현관 앞에 놓여 진 박을 힘차게 밟고 들어온다. 함은 본래 아끼는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사랑과 소중함을 표현하는 증표이자 혼인을 약속하는 의식이라 한다. 상견례를 하고나서 혼사를 준비하면서도 34년 동안 자라온 딸이 곁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함 의식에서 기쁨과 슬픔이 서로 교차하는 착잡한 마음을 느낀다.
옛날 함 들어가는 풍습이 이웃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서 자꾸 간소해져 가는 것이 아쉽다. 함은 결혼식 전날 보내기도 하지만 신부 집의 상황을 고려해 결혼 일주일 전 후쯤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음양이 교체하는 시간에 함을 보낸다고 하여 해가 진 뒤에 신부 집으로 함을 가지고 간다. 신랑이 가져 온 함을 정중하게 받아 붉은 보자기로 싼 상에 있는 시루위에 올려놓는다.
함진아비이자 사위가 될 신랑과 맞절을 한다. 함진아비에게 예를 다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다. 붉은 보자기로 감싼 함을 옛날에는 신랑 집에서 경험 있는 이웃이나 지인의 협조로 직접 쌌다는데, 요즈음은 예단을 준비하는 한복집에 부탁만 하면 완벽하게 준비해 준다. 함보의 네 귀퉁이를 모아 잘 꼬아서 연꽃 모양처럼 만들어 함을 싼다. 매듭은「근봉」이라고 쓴 종이로 감싸서 풀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함은 오동나무가 제일 좋지만 비싸고 귀해서, 은행나무 함, 지함, 나전칠기 함 등을 사용했다. 요즈음은 실속 있게 신혼여행갈 때 사용할 가방을 쓴다. 지퍼를 열고 함 속에서 결혼을 허락해 준 감사의 혼서지를 꺼내어 읽는다. 혼서는 집안에서 제일 높은 남자어른이 써 왔는데, 최근에는 예단 집 등에서 인쇄 또는 복사한 것을 사용한다고 한다. 내용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모르는 한자는 몇 자 얼버무린다.
사전에 알았다면 옥편을 찾아서 완벽하게 읽었을 텐데 아쉽다. 종이를 규격으로 하여 아홉 칸으로 접은 곳에 「귀한 따님을 며느리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인쇄된 문구이다. 양쪽 끝에서 가운데로 모아접어서 봉투에 넣은 다음 네 귀에 금전지를 단 겹보자기를 싸서 포장 한다. 옛날에는 혼서지는 죽어서 무덤에까지 함께 넣어갈 정도로 신부에겐 귀중한 것으로 일부종사를 의미했다고 한다.
여자의 음기를 상징하는 청색비단은 붉은색 한지에 싸서 청색 명주실로 묶고, 남자의 양기를 상징하는 홍색비단은 푸른색 한지에 싸서 붉은색 명주실로 묶었다. 명주실은 매듭을 짓지 않고 한 번에 매듭이 풀리도록 맨다. 얽어 놓는 것은 한지의 위아래를 소통시켜 부부간의 막힘없는 화합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신부의 어머니는 함안에 손을 넣고, 음양의 결합을 뜻하는 청홍비단의 채단을 꺼낸다.
이때 청색이 싼 채단이면 아들을, 홍색이면 딸을 낳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절차를 마친 함은 신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여보낸다. 함을 받치고 있던 시루 안의 봉치 떡은 신부어머니가 칼로 자르지 않고 신부의 밥그릇으로 밤과 대추가 있는 부분을 잘라서 신부에게 제일 먼저 먹인다. 제일 먼저 먹이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라고 한다.
방에 있는 신부는 보통 결혼식용 한복이 아닌 별도의 한복을 입는데 요즈음은 단정한 예복을 주로 입는다고 한다. 들어 온 함은 신부 친지와 친구들이 함께 어우러져 함속의 내용을 본다. 채단은 신부에게 주는 청홍 옷감을 뜻하는 것으로 청색 옷감은 홍색 종이에 싸서 청실로, 홍색 옷감은 청색 종이에 싸서 홍실로 묶는다고 한다. 이때 명주실은 한 번에 풀 수 있도록 동심결로 묶어야 하고 매듭을 짓지 않는다.
시아버지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되어 평생 간직해야 된다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혼서지 있는 초가삼간과 혼서지 없는 고대광실의 안방」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물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채단 위에는 신랑의 생년월일을 적은 사주를 홍 보자기에 싸서 근봉을 한 후 넣는다. 함을 쌀 때는 함 바닥에 고운 종이로 여러 겹을 깔면서 정성을 다한다.
오방주머니는 고유의 5가지 색으로 붉은색 주머니엔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로 붉은 팥을, 노란색 주머니엔 귀한 신분을 상징하고 며느리의 심성이 부드럽기를 바라는 의미로 노란 콩을, 파란색 주머니엔 인내하며 살고 부부의 해로를 기원하고 질긴 인연을 바란다는 뜻으로 찹쌀을, 분홍색주머니엔 자손과 가문의 번창을 의미하는 목화씨를, 연두색 주머니엔 절개와 순결을 상징하는 향나무 깍은 것을 넣었다.
각 주머니의 내용물의 개수는 홀수로 넣었다고 한다. 함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신부가 치장 할 수 있도록 시어머니는 손거울과 자신의 귀금속 등을 함에 담았다고 한다. 또한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의미로 청홍보자기에 기러기 한 쌍을 싸서 넣었다고 한다. 현대의 함은 추가로 신부가 꾸밀 수 있는 것으로 한복이나 양장을 한 벌, 핸드 백, 화장품 세트 등을 넣기도 한다.
이외에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취향을 배려해 일정금액을 현금으로 주어 본인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토록 배려도 한다. 제일의 관심은 다이아몬드, 순금, 진주 등의 각종 보석이 들어 있는 상자이다. 옛날에는 함진아비와 일행들이 수고 했다고 음식을 대접하고 함 값을 줬고, 그 금액을 얼마 받았느냐를 비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신랑이 직접 함을 가지고 오기에 함 값 지불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함을 지려고 하였던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나 하라고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신랑에게 준다. 신부는 이상의 받은 함과 함을 매었던 무명을 잘 챙겨두었다가 시집갈 때 가지고 간다고 한다. 이 모든 절차의 의식이 끝나면, 집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한 상 차려 놓고 조촐한 축하연을 갖는다.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가 참여치 않아, 축하해주러 온 친척들과 가족이 함께 조용한 저녁식사를 한다.
결혼식을 10여일 앞두고 함 들어오는 전통의례를 무사히 마치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은 간소화의 물결에 따라 많이 축소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우리의 문화를 이대로나마 계승 할 수 있음에 마음이 흡족하다. 그냥 함을 받기만 하려던 가벼운 마음이 함 받기 직전에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하여 어설프지만 전통의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한다.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에 보람이 더 크다.
앞으로 딸이 결혼해 행복하고 건강히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똑 같을 것이다. 작은 일을 가지고「서로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서로 양보 하면서」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주위에 있음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생 살아주기를 아버지는 항상 기도 하련다. 함을 보내주신 사돈과 기쁨을 함께 해 주신 친척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3. 8. 25(日). 함을 받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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