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기에 부담 없이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여행 산문집 ‘끌림’에 끌려 가본다. 책표지의 돌출부분과 아담한 사이즈가 기존 책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책속에서도 흰 바탕에 검정글씨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컬러 바탕에 글씨 색깔도 검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또한 페이지가 없는 책은 처음이다.
1967년생의 젊은 작가 이병률의 참신함이 책의 고정관념을 허물게 해준다. 지난 10년간 여행만으로 50개국의 200여개 도시를 다니느라 비행기도 170회나 탑승하였다 한다. 주로 혼자 여행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길거리에서 일어났던 일과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과 글로서 잘 나타내고 있다.
일 년에 한 두 번가는 우리의 해외여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하여야 한다고 했나! 자주 못가는 여행은 관광지 위주로 다니는 패키지여행을 택하게 된다. 많은 곳을 잠깐씩 들리고, 사진도 증명사진 위주로 찍는다. 이 책은 삶의 모습 을 대형사진으로 양쪽 페이지, 또는 한쪽 전체를 장식한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여행객이 주로 찾는 관광지가 아닌 생활하는 모습과 풍경을 다루고 있다. 여행의 묘미는 사람의 채취가 묻어있는 곳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구경하며, 그 나라의 문화와 삶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덧없는 세월은 멀리까지 와있으니, 그러한 여행으로의 전환은 쉽지가 않다.
책의 규격도 크지 않아 손에 들고 읽기 쉬우며, 내용과 구성도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다. #028(대륙의 반대쪽)에서는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에 대한 짧은 글 4줄만 있고 나머지는 공백이다. 옆쪽은 동부뉴욕에 관한 글 4줄만 쓰고 백지이다. 뒤에서 뉴욕 맨해튼에 있었던 일들을 언급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이다.
주로 여행에서 보고, 듣고, 쓰는 대상에 따라 이렇게 글이 달라 지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하나하나의 글이 길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삶을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 속에서 가슴에 와 닿은 글귀 몇 개를 정리하여 올려본다.
#001.(‘열정’이라는 말)열정은 강 하나를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004.(그렇게 시작됐다)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 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 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짝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018.(사랑해라)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 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018.(끌림)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043.(먼 훗날)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 버렸잖아요.
#061.(페루에서 쓰는 일기)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을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000.(도망가야지, 도망가야지: epilogue)끊임없이 뭔가가 닥치는 일이 인생이고, 그 닥치는 일을 잘 맞이하고, 헤치고 그러다 다시 처음인 듯 끌리고 하는 게 인생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모든 이들의 바람처럼 그 인생을 통째로 느끼고 싶었고, 느끼며 살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의 바탕은 그것이 된다.
'책 이야기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0) | 2010.10.12 |
---|---|
마지막 강의 - 랜디 포시 (0) | 2010.09.30 |
하악 하악 - 이외수 (0) | 2010.08.10 |
사람의 한평생-정종수 (0) | 2010.07.23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최인호 (0) | 2010.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