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있어 수시로 많이도 오르고 내렸던 남한산성이지만, 성안을 자세하게 돌아보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등산을 하면 주로 청량산에 해당하는 수어장대까지 오르거나, 성곽을 한 바퀴 돌기, 성곽밖에 있는 남한산 정상이나 벌봉까지 다녀오는 경우가 많았다. 남한산성 안에 있는 행궁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돌아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관광 개념으로 출발한다.
< 남한산성(南漢山城) 안내도 >
< 8호선 산성역 2번 출입구 >
< 산성로터리 버스정류장(종점 터미널과 같은 곳) >
가벼운 배낭에 행동식과 물만 챙겨 가지고 9시에 집을 나선다. 3호선 오금역과 8호선 가락시장역에서 환승하여, 산성역 2번 출입구로 나온다. 30m 정도 내려와서 있는 신흥주공아파트 후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기적인 노선은 9번과 52번이 있는데, 토.일.공휴일에는 산성역과 남한산성까지만 운행하는 9-1번 버스가 수시로 있다. 남한산성까지 3.2km를 버스를 타고 편하게 오른다.
<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시석 >
< 남문(南門) 또는 지화문(至和門) >
< 행궁(行宮) 매표소(성인:2,000원) >
10여분 기다린 후에 오는 9-1번 버스로, 1시간이상 힘들게 올라야 할 산성을 10여분 만에 산성종점에 도착한다. 남한산성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버스타고 온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서 있는 남문부터 관광을 시작한다. 남문은 4개의 문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현재에도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다.
<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 안내도 >
< 행궁의 정문인 ①한남루(漢南樓) >
< 외삼문(外三門, ②남북 행각) >
남문에서 버스 종점으로 다시 내려와,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행궁으로 간다. 행궁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초가집으로 이뤄진 매표소의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이고 경로는 무료입장이다.
< ③ 외 행 전(外 行 殿) >
< ④ 통일신라 건물지(統一新羅 建物址) >
< ⑤ 일 장 각(日 長 閣) >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로 입장하니, 외삼문(外三門)을 중앙에 두고 양측으로 행각이 이어져 있다. 외삼문을 지나서 있는 외행전은 인조 3년(1625)에 준공된 건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규모이나, 내행전보다 바닥 면적이 작고 낮은 곳에 지어졌다. 우측에는 통일신라 건물지(建物址) 발굴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다. 일장각은 행궁 하궐에 있던 광주부 유수가 사용하던 건물이라 한다.
< ⑥ 좌 승 당(坐 勝 堂) >
< ⑦ 이 위 정(以 威 亭) >
< ⑪ 행궁 담장 밖의 좌전(左殿) >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는 청량산의 다른 이름이 일장산 이었기에 건물 이름이 되었다. 상궐 내행전의 북쪽 담장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이다.「좌승」이란「앉아서 이긴다」는 의미로 반드시 이길만한 계책을 세워 적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이위정은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좌전은 상궐 북쪽 담장너머로 있어, 행궁 내에서는 갈 수 없다.
< ⑧ 재 덕 당(在 德 堂) >
< ⑨ 내 행 전(內 行 殿) >
< 내행전 안의 용상(龍床) >
유사시 종묘의 신주를 옮겨와 봉안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묘(廟)를 감추려고 전(殿)을 붙이었다. 서울 종묘와 같이 정전과 영녕전으로 구분하여 놓았다. 재덕당은 상궐 내행전 뒤편 언덕에 있던 건물인데 숙종 14년(1688)에 유수 이세백이 건립하였다. 사당으로 추정할 뿐이고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1624)에 처음 지어졌다.
< 내행전을 배경으로 인증 샷 >
< ⑩ 행궁 밖, 통일신라 기와 유구지 >
< 행궁 밖, 매표소 아래 인화관(人和館) >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싸웠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했다고 한다. 행궁 밖으로 나와 발굴된 통일신라대의 대형의 기와 전시장소를 들린다. 인화관은 객사(客舍) 건물로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던 곳이다.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호, 침괘정(枕戈亭) >
< 남한산성의 영월정(迎月亭) >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숭렬전(崇烈殿) >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거나, 외국사신이나 중앙에서 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예상보다 작은 규모의 행궁을 둘러보고 나와서는 성안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를 둘러본다.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로 알려졌으나 온돌과 마루방 그리고 툇마루 등의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사용한 것 같다. 영월정은 달 밝은 밤에 운치가 있을 듯하나, 지금은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수어장대(守禦將臺) >
< 서문(西門) 또는 우익문(右翼門) >
< 북문(北門) 또는 전승문(全勝門) >
숭렬전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을 쌓은 책임자였던 이서를 모신 사당이다. 남한산성에 등산 오면 꼭 들리는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어장대이다.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인조 2년(1624)에 지어졌다. 원성에는 동·서·남·북 모두 4곳의 성문이 있었는데, 남문은 지화문, 서문은 우익문, 북문은 전승문, 동문은 좌익문으로 불렀다. 차례대로 4개의 성문을 전부 돌아본다.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 연무관(演武館) >
< 젊은 시절에 다녀갔던 추억의 음식점 >
< 천주교 순교자 성지 입구 >
서문은 인조가 항전하다 패하고서 청태종 앞에 항복하러 나갔던 문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삼전도의 굴욕」이 떠오른다. 산성로터리 버스 종점으로 내려오면서 보니, 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마을들이 모두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다. 파출소, 초등학교, 소방서 등도 모두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모 모임이 형성되어 함께 찾았던 동문집이 추억을 불러온다.
< 남한산성 성지 내 성당 >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호, 현절사(顯節祠) >
< 새롭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남한산성 역사관 >
동문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양쪽에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어 찾아가기 바쁘다. 남한산성에 순교성지가 있는 줄 몰랐는데, 코스 경로를 정할 때에 알게 되었다. 조선 중기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외진 이곳으로 끌려 와 순교 당했다고 한다. 남한산성 내의 성지답게 성당은 전통적인 한옥으로 지어졌다.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을 끝까지 반대했던 우국충절을 기리는 사당인데 잠겨 있다.
< 개원사(開元寺, 경기도 기념물 제119호) 일주문 >
< 개원사 경내(종각 및 대각전) >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지수당(地水堂) >
기존의 남한산성 역사관은 폐관되고, 옆에 한옥으로 아담하게 지어졌다. 남한산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승군을 소집하여 10개의 사찰에서 지내었다. 성을 쌓은 후에는 성을 지키는 일을 맡았고, 각 사찰은 군기와 화약을 보관했다.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3개의 사찰만 있다. 개원사는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승려들을 총지휘하던 본영 사찰이었다.
< 지수당 뒤편으로 있는 큰 연못 >
< 동문 성곽 차도에서 망월사와 장경사 가는 길 >
< 동문(東門) 또는 좌익문(左翼門) >
지수당은 현종13년(1672)에 지어진 정자로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추정한다.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3개의 연못이 있었으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정자 뒤편에 있는 큰 연못은 물이 맑지 않은데, 하나의 거울이 되어 주위풍경을 물속에 그려 놓는다. 동문(좌익문)을 보고나서, 안내 표시 따라 망월사와 장경사를 가기 위해 경사 급한 오르막 차도를 힘겹게 오른다.
< 경기도 기념물 제111호 청량산 망월사 일주문 >
< 망월사 경내의 극락보전과 석탑을 배경으로 >
< 경기도 문화재재료 제15호 장경사 경내 >
망월사는 남한산성에 있었던 10개의 사찰 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절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과 금자 화엄경 등을 옮겨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한 장경사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 때, 승려 벽암각성을 팔도 도총섭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들을 번갈아 징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던 사찰이라고 한다.
< 뒤풀이 장소 낙선재 >
< 낙선재의 상차림 메뉴 >
< 주문한 닭볶음탕에 소주 한잔으로 >
산성로터리 종점에서 운행되는 버스는 남문방향에서 성남으로 가는 버스(9번, 52번, 9-1번)은 수시로 있는데, 동문방향에서 광주로 가는 15-1번 버스는 토.일.휴일인 경우는 배차간격(...12:35, 13:15, 14:15, 15:45...)이 더 길어 진다. 경강선의 개통과 함께 광주역까지 가는 버스로, 동문 앞에서 4정류장(-남벽수-검북리마을회관-개미촌-)을 지나 불당리에서 내려 한참 걸으면 뒤풀이 장소 낙선재 이다.
자주 찾았던 전통적인 한옥 건물의 음식점으로, 맛있는 닭볶음탕에다 소주로 뒤풀이를 한다. 남한산성에 오를 때마다 성안을 둘러보겠다고 했는데, 오늘 오랜만에 숙제를 마치었다.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기에 편하고 여유롭게 돌아 볼 수 있었다. 산에 오르기 힘든 노약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행궁을 비롯한 문화재 등을 돌아보면서 자연과 함께 하루를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멋진 여행코스이다.
2017. 3. 11. 남한산성 성안의 행궁과 문화재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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