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해외여행

이집트-룩소,왕가의계곡,카르낙신전 여행

leepuco 2009. 6. 24. 11:07

                                            

 룩소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70km쯤 떨어진 고대 수도로 기차로는 10시간이상 걸린다. 비행기는 매일 4-6편 운행되며 소요시간은 1시간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멋있다는 기차여행도 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이곳이 수도로 정해진 것은 중왕국시대 제12왕조이며, 전성기는 신왕국시대의 제18-20왕조이다.

 

 

-  도 착  과  출 발  -

  새벽 4시 기상하여 카이로를 출발하여 룩소에서 하루(4월18일)를 보내는 일정이다. 식사도 하지 않고 카이로 공항으로 갔다. 국내선 수속을 하면서 나누어 주는 햄버거와 우유로 아침을 대신했다. 6시30분에 출발하여 1시간 뒤 도착,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는 10km이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는 밤 11시55분 비행기로 룩소 출발, 다음날 새벽 1시30분에 카이로 호텔에 도착하여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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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의 역사  -

  이집트에 대하여 설명을 듣게 될 때마다 간단한 역사를 알고가면 이해가 빠른데 전혀 준비를 못하고 가서 어려움이 많았다. 고대시대의 시대적 상항과 당시 자주 등장하는 왕들을 여행 가이드 책을 보면서 정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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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왕국(古王國) 시대: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 무렵의 메네스 왕에 의해서 통일 되었고, 이때부터 이집트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시대를 초기 왕조라고 하며, 기원전 2,650년 무렵에 멤피스를 수도로 하여 고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고왕국 시대를 창시한 조세르 왕은 사카라에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조했다. 그 후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 등의 파라오에 의해서 많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


중왕국(中王國) 시대: 기원전 2040년 무렵, 혼란스럽던 이집트가 테베 호족의 승리에 의해 다시 통일되고 멘투호테프 2세의 시대부터 중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이 중앙국 시대는 문화적으로 특징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대부분 고왕국 시대를 모방하는 것으로 끝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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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국(新王國) 시대: 기원전 1550년 무렵, 마침내 아하모세 왕이 힉소스를 이집트로부터 추방하고 테베(룩소)를 수도로 하는 신왕국 시대를 시작한다. 신왕국 시대는 제18, 제19, 제20의 3개 왕조로 구분하고 있고 제18왕조에는 투탕카멘 왕도 등장한다. 투트모스 1세는 남쪽의 누비아나 팔레스타인 방면까지 원정하였다. 왕가의 계곡에 처음으로 무덤을 만든 왕도 투트모스이다. 투트모스 1세의 딸인 함세슈트 여왕은 장제전을 건축하였고 현재의 소말리아 와 적극적으로 교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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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 람세스가 즉위하여 제19왕조를 세운 것은 기원전 1320년 무렵이다. 이 람세스라는 이름을 지닌 왕은 11세기까지 이어진다. 람세스 2세는 과시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이집트 내에 신전을 만들어 자기 이름을 새겼다. 모세가 등장하는 것도 이 시대이다. 신왕국 시대도 쇠퇴하여 기원전 1080년 무렵에는 말기 왕조시대를 맞이한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이집트는 정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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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 소 ( Luxor ) -

  버스를 이용하여 나일강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서안(西岸)지역을 먼저 갔다. 이곳은 왕가의 골짜기나 함세슈트 장제전 같은 왕묘가 있다. 반대편  동안(東岸)지역은 카르낙 신전이나 룩소 신전 등의 거대한 신전이 대표적이다. 가는 도중 차창 밖 시골풍경은 우리가 어렸을 때 힘들게 살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길가에 집을 보면, 완전 땅바닥에 흙벽돌로 벽을 하고 지붕을 덮은 자체가 집이었다.


  서안의 구경을 끝내고 나일 강 강가로 가서 ‘펠루카’라는 돛단배로 강을 건넜다. 강변에는 나일 크루즈를 하는 고급여객선이 즐비하게 정박 중이다. 이 코스는 육로로도 가능하지만, 평소 절약 여행을 하더라도 때로는 호화객선을 타고 우아한 한때를 보내는 것도 좋다. 낮에는 나일강을 보면서 갑판 위에서 여유 있게 관광하는 것도 즐거운 여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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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 과 음식   -

  하루 일정을 끝내고 자정 무렵 돌아 가야함으로 점심을 한 호텔에서 하고는, 로비에서 두 번의 휴식만 가졌을 뿐  숙박은 없었다. 이 나라는 고대부터 많은 민족이 뒤섞여서 음식도 다양한 나라의 민족요리를 받아 들였다. 아랍요리의 스탠더드 메뉴를 기본으로 터키의 케밥, 그리스의 해산물,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 등이다.


  건너면 동안 지역으로 예약된 호텔 뷔페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저녁에는 한국인 식당을 찾았는데 화장실은 작고 여성 인원은 20명이나 되니, 남녀 화장실 구분 없이 모두 일시에 점령한다. 그러한 경험을 터키 아야 소피아 공중 화장실에서도 있었는데, 급하긴 급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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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 식 시 간   -

  점심식사를 하고는 3시까지 휴식시간 이다. 오전에 너무 더운 날씨에 사막지대를 다녔기에 오후 일정 강행은 무리라 하여 모두 쉬는데 1층 로비 소파가 온통 여행객들이 낮잠 자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일정을 마치고 카이로에 가는 비행기시간이 자정쯤이기에 그 시간을 기다리기 위하여 점심식사를 했던 호텔로비로 갔다. 그때부터 자유 시간으로 거의 모두가 피곤하여 소파에서 잠이 들면, 호텔에서는 잠자는 곳이 아니라고 깨운다. 몇 번 신경전을 펴다보니 시간은 계속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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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의 계곡 ( Valley 0f the Kings ) -

  먼저 간 곳은 왕가의 계곡으로 황폐한 돌산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은 자의 도시이며, 이곳에 파라오들의 62개 무덤이 있고 1개 무덤은 발굴중이라 한다. 입구에서 전용 이동차량 셔틀 트레인으로 계곡까지 들어갔고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가며 구경한다.


  사막 한가운데라 햇볕이 강하고 모래바람이 불어 일행 중 여성들은 얼굴 감싸기로 바쁘고, 이러한 모습을 서양인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황량한 바위산을(도굴을 두려워한 나머지) 피라미드 대신 안식처로 정하였다는데, 결국 도굴꾼들의 집요한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곳 많은 무덤들 중 3개의 무덤만 구경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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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무덤은 투탄가문의 묘로 무덤을 발견해 10년 동안 발굴하고, 유물들은 모두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 옮겼다.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원인모를 병으로 사망하기도 하여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도 만들어 졌다. 묘는 전실, 현실, 보고, 별실로 되어 있었고 현실에 남아있는 벽화는 볼만 하였다.


  두 번째는 계곡 가장 안쪽에 있는 묘로 가파른 골짜기에 있어 철제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함세슈트 여왕에 이어 왕위에 올라 대규모 원정을 17회나 한 이집트의 나폴레옹 이라고 불리는 투트모스 3세의 묘이다. 내부 구조가 꽤나 복잡하게 만들어 도굴을 방지하기 위함 이며, 벽화는 화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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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는 람세스 6세의 묘로 올라 갈 때는 관광객이 많아 못보고, 내려오면서 간단히 보았다. 입구부터 인파가 제일 많았고 벽화는 제일 아름다웠다. 계곡에서 나와서는 인근의 노동자의 마을이라는 돌 가공공장 겸 가게를 찾아 쇼핑을 하는데 규모나 가공하는 방법이 영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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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슈트 여왕 장제전  -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전이 신의집 이었던 것에 비해서, 장제전은 사후의 왕을 모시기 위한 죽은 왕의 집 이었다. 다시 말해서 왕이 사후에 내세에서 재생 부활 하기위한 의식을 집행한 장소이다. 장제전 에는 왕의 혼이 머무는 조각상이 안치되고, 제단 위에는 신관들에 의해서 곡물이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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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뒤로하고 서있는 신전은 거대한 3층 테라스식 건물로 함세슈트 여왕이 만든 가장 독창적이고 웅장한 신전이다. 보는 높낮이 각도에 따라 3층이 2층 또는 1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22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1층 테라스 양쪽 끝에 오시리스 석상이 서 있다. 2층 테라스 벽면에는 그녀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과 다른 나라와 교역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남편인 투트모스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어린 투트모스 3세를 대신해 섭정하다가 그녀 스스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서자이었던 투트모스 3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섭정당시 설움을 이기지 못해 신전과 모든 기록을 파괴하여 버렸으나 지금은 잘 복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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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멤논 거상( Clossi of Memnon )  -

  밀밭 옆 평지에 웅장한 석상이 나란히 서있다. 한 그리스 시인이 석상에서 매일 새벽마다 마치 슬피 우는 듯 한소리가 나자, 그리스 신화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에디오피아의 왕 멤논은 트로이전쟁에서 죽음을 당한다.

 

 

  그래서 이오스 신은 매일 새벽 그의 아들을 달래려 오고, 멤논은 슬픔에 겨운 소리로 답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실상 소리는 풍화작용에 의해 균열이 생긴 돌이 사막의 세찬 바람을 맞아서 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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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낙 신전( Temple of Karnak ) -

  이집트에서 최대 규모의 유적으로 원래는 작은 부락이었는데, 신 왕국시대가 되면서 거대한 신전이 되었다. 카르낙 에는 몇 개의 신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몬 대신전은 이집트에서 최대 규모의 유적이다. 아몬신은 원래 작은 부락의 지방 신이었으나, 중왕국 시대부터 나라가 번성하자 태양신과 결합하여 국가의 최고신이 되었다.

 

 

 

 파라오는 이곳 아몬 신의 비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고, 그 때문에 역대 파라오는 아몬 신 신앙의 땅에 신전, 오벨리스크, 신의 동상 들을 기부하였다. 그리하여 카르낙 신전( 규모: 가로 1.5km, 세로 0.8km의 터)은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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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큰 돌기둥이 늘어선 대열주실 앞에 서면 그 거대함에 압도되며 인간의 위대함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높이 23m와 15m의 2종류의 거대한 열주가 134개나 된다. 기둥에도 다양한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대열주실에서 정면으로 나가면 함세슈트 여왕이 세운 오벨리스크와 투트모스 3세 신전등이 유명하다. 그 뒤로 넓은 신전 터와 옆에 있는 연못을 보고는 그곳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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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룩소 신전 ( Luxor Temple ) -

  가까운 거리에 있는 룩소 신전으로 이동하는데, 버스가 고장이 나서 멈춰버리자 가이드가 늘 써오던 인셜라를 외친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자주 쓰는 용어인 신의 뜻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이곳 사람들의 깊은 신앙과 긍정적인 삶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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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몬 대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된 것이다. 예전에는 카르낙 신전과 스핑크스가 양옆으로 늘어선 참배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두 신전사이 3km의  구간을 스핑크스 거리라 하였다. 지체가 되어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자 조명이 들어와 어렴풋이 보이기는 하였지만, 자세히 볼 수는 없었고 규모면에서는 카르낙 신전보다 작았다. 이 신전은 신 왕국 시대 초기에 아멘 신과 그의 아내 무트, 아들 콘스를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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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이 제1탑문이며 여기에는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왼쪽의 1개뿐이다. 오른쪽에 있던 것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 있다. 제1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의 좌상 1쌍과 입상 2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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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마 차   -

  저녁식사를 마치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나일강변과 야시장을 구경하는데, 일행 중의 앞 마차는 망아지가 계속해서 엄마 말을 따라 같이 가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야시장은 우리 시골 시장을 연상케 하였고, 마늘, 양파 등은 우리와 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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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념 품  상 점   -

  왕가의 계곡을 보고나서 이동을 하니 조그마한 노동자 마을의 돌 가공 공장이 나온다. 여기서 수작업으로 옥을 깍아 기념품으로 판매한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상품을 만든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기에 가격이 비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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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밤을 이집트 맥주로  -

  처음 여행을 할 때는 인원 구성상 어려움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별 무리 없이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일행 중 몇 명이 호텔 바에서 만나 이집트 맥주를 마셨다. 가이드, 아내동창과 친구, 모녀간(딸은 대학생), 단체로 온 팀 중 한분과 우리가 같이 하니 8명이 되었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하였던 것이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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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을 모두 마치고  -

  오전 9시10분에 카이로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가는 대한항공편에 몸을 맡기고 여행을 뒤돌아보니, 좀 힘든 일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여행은 한마디로 역사탐방이었다. 이집트의 무덤, 그리스의 기둥, 터키의 이슬람사원이 대표적이다. 이집트에서 많은 피라미드(왕의 무덤)를 관광하고 느낀 것은 절대 권력을 지녔던 왕들도 집권만 하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 것이다.


  자신이 묻히게 될 무덤을 호화롭게 여러 해 공사를 하고, 그곳에 영원히 잠든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생은 무상(無常)하기에 때가 되면 죽음을 준비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유가 멋진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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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마치고 돌아 와서.....  -

  올 때와 같이 두바이를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오다보니, 시차와 비행시간에 의하여 하루가 비행기 안에서 쉽게 지나간다. 새벽 6시 45분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일행과 아쉽게 작별하며 헤어졌다. 며칠 후 모녀 팀이 정릉에 살기에 그곳 화로구이 집에서 소주 한잔씩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귀여움을 독차지 하던 학생은 대학의 후배이기도 하여 더욱 반가웠고,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즐거운 뒤풀이였다.



 

                       2006년 4월 여행을 정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