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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걸으멍)제주 걷기 여행 - 서명숙

leepuco 2011. 3. 22. 21:53

  올레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리기 시작한지가 얼마 안 되는데, 최근에는 주위에서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내도 오늘 어느 모임에서 단체로 다녀온다고 그 길을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의 인생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는 산티아고 길을 이 책의 저자도 다녀 온 뒤 제주 올레를 발족하였다 한다.

 

 

  지난달 예순을 앞둔 수녀이신 저자 조이스 럽느긋하게 걸어라를 감명 깊게 읽고 나서, 오늘 우연히 제주 걷기 여행책을 읽게 되니 제주에 대한 옛날 생각과 함께 제주의 푸른 바다가 당장 오라고 손짓을 한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섬,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다.

 

  누구나 수없이 많이 찾았던 제주, 옛날 생각이..... 학창시절 그곳이 고향인 친구와 함께 여름방학 때 처음 찾기 시작해, 신혼여행 시, 직장 업무 일로, 세미나 후 골프나 바다낚시, 모친을 모시고 전 가족의 관광, 작년에 아내와 함께 한 여행, 그중 책을 보면서 처음과 마지막 여행 시의 풍경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40여 년 전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서, 섬 일주를 했다. 당시는 길도 잘 나있지 않고, 시외버스도 가끔 있어 이용하기 쉽지 않아 대부분 걸었다. 걷다가 해가지면 바닷가 어느 마을 마당에서 자리만 깔고 자고, 어느 숲이 있는 길가에서 천막을 치고 자고, 또 걸었던 것이 지금의 올레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작년에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그 동안 가보지 못한 마라도, 송악산, 우도, 섭지코지, 외돌개, 주상절리대 등을 구경하였던 기억이 푸른 바다와 함께 다가온다. 또한 이웃이 그곳에 이사하여, 살고 있는 집을 방문 시 너무 좋으니 내려오라고 한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게 한다.

 

  ‘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아 보지 않고는 제주를 알 수 없다고 하는 오름이 368개나 된다는데,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오름에 이어서 올레가 추가 된다. 그러나 올레코스 안에는 오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너무나 그리운 풍경과 함께 제주의 속살을 언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을까!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차량으로 획획 스쳐가면서 차창너머로 본 풍경이, 유명 관광지와 골프장과 박물관 따위가, 제주의 전부가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올레 길을 직접 걸으면서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상처받은 마음을 올레에서 치유하기를.....

 

두발로 걷는 제주는 정말 너르고 다채로웠다. 같은 서귀포시 에서도 해안마다 돌멩이의 종류와 생김이 달랐고, 돌담을 쌓은 방식도 중산간과 해안마을이 판이했다. 종달 시흥 바닷가의 옥색, 남원리 큰 엉의 쪽빛, 외돌개의 청자색..... 바다는 또 얼마나 여러 빛깔인지.

 

도보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차량으로 휙휙 이동하면 눈만 즐겁지만, 같은 장소라도 걸어서 가면 오감이 충족된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며,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을 느끼면서, 꽃향기를 흠흠 맡으면서, 풀 섶에 숨은 산딸기 등 열매를 따 먹는 즐거움이란!

 

분노는 옅어지고 그리움만 짙어진다. 미움은 사라지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음만이 안타깝다. 강물 위에 띄운 종이배처럼 흘러간 일에 왜 그리 마음 상하고 애를 끓였을까. 대관절 무엇을 위해 뜨는 해, 지는 노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이 살았던 걸까.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자신에게 왜 그리도 무심했을까.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한 내가 세상을,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올레에 가장 많이 출몰하는 여성은 역시 경제력과 시간 둘 다 구비한 젊은 독신여성이다. 이들에게는 곰국을 끓여놓고 가야하는 의무도, 마음 쓰이는 자식도 없다. 맘만 먹으면 어디로든 날아다닐 수 있다. (.....)전화벨 소리도, 인터넷과 핸드폰에서 넘쳐나는 정보들로부터도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출퇴근길 자동차 소음과 복잡한 지하철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이 천국일지 모른다고 때로는 생각했습니다. (.....)바닥난 에너지 충전하려고!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바람 부는 날에도 올레를 걸을 수 있는가. 나는 대답한다. 바람 부는 날 올레 길을 걷게 된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제주의 길만 아니라 제주의 삶을 느끼게 될 터이니. 바람 속에서 제주 바다는 당신에게 깊은 속살을 내어 보일 터이니. 어디 제주의 삶뿐인가. 당신의 인생에도 바람이 자주 불거늘.

 

그동안 죽을힘을 다해 뛰어 왔는데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성공했는데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다.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올레를 몇 시간 걸었을 뿐인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데도, 평화와 행복과 위안이 절로 찾아온다.

 

나는 올레 후유증을 호소하는 올레꾼들을 만날 때마다 제안한다. 아무리 제주올레 길이 아름다워도 매번 제주를 찾을 수는 없으니, 당신들도 가까운 곳에 올레 길을 만들어 즐기라고. 산티아고 길에서 영국여자가 내게 해준 조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