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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금따는 콩밭, 소낙비 - 김유정

leepuco 2012. 11. 6. 23:41

 

  춘천 실레마을의 금병산 등산코스는 동백꽃길, 산골나그네길, 금따는콩밭길, 만무방길, 봄봄길이 있다. 지난 봄 아내와 함께 산행 할 때, 등산로 이름이 김유정 선생의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어 겸연쩍었다. 문학관에 들려 알아보려 했으나, 월요일로 휴관이었다. 다음 주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금병산을 다시 오르기로 하여, 늦게나마 소설을 읽고 간다.

 

 

< 동백꽃 : 10쪽 분량의 단편소설 >

  농촌마을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소박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해학적으로 다룬 단편소설이다. 점순이가 그렇게 관심을 끌어보려고 귀한 감자도 가져다주고, 닭을 끌어다 싸움까지 시키건만 순박한 소설속의 주인공은 전혀 의식도 못하고 성질이 못된 계집으로만 착각한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또는 산동백이라고 불렀다니, 소설속의 노란 동백꽃은 존재하지 않기에 생강나무 꽃이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야기에는 국경, 신분, 빈부 등의 차이를 스스로 극복해 가는 과정이 주로 그려진다. 이 소설도 그렇게 전개되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점순이네 닭을 죽게 하고, 점순이는 이를 용서하여 이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랑을 느꼈다는 것이 아쉬움을 준다. 노란 동백꽃이 핀 화사한 봄날에 점순이의 구애가 성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조금 뒤에는 제 집게를 할끔할끔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 손을 뽑아서 나의 턱 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63>

 

2.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달리면 점순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리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 65>

 

3.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꼬여 내다가 쌈을 붙인다. < 67>

 

4. “닭죽은 건 염려마라. 내 안 이를 테야!”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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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 따는 콩밭 : 15쪽 분량의 단편소설 >

  생활이 궁핍하던 일제 강점기 시절, 순박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진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영식에게 어느 날 친구 수재가 찾아와 자신이 농사짓고 있는 콩밭이 금광맥의 끝자락에 있어 금이 묻혀 있다고 유혹한다. 옆에 있던 아내도 금이 펑펑 쏟아지면 흰 고무신도 신고 얼굴에 분도 바르리라 생각하며 남편을 부추긴다. 동네 주민과 마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콩밭을 파헤친다.

 

  쌀을 꿔다 떡을 해 산신께 제도 올리면서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땅 굴을 파 보지만 금 소식은 깜깜하다. 아내는 생활이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남편 영식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말다툼까지 하게 된다. 같이 땅을 파던 영식과 수재의 사이도 나빠지며 둘 사이는 굴속에서 몸싸움까지 한다. 이렇게 되자 수재는 황토 흙을 보이면서 이안에 금이 있다고 소리치면서 그날 밤 줄행랑을 쳐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산에서 내려오는 마름과 맞닥뜨렸다. <중략> “말라니깐 왜 또 파는 거야.”하고 영식이의 바지게 뒤를 지팡이로 콱 찌르더니갈아 먹으라는 밭이지 흙 쓰고 들어가라는 거야, 이 미친 것들아, 콩밭에서 웬 금이 나온 다구 이 지랄들이야 그래.”하고 목에 핏대를 올린다. 밭을 버리면 간수 잘못 한 자기 탓이다. 날마다 와서 그 북새를 피고 금하여도 다음 날 보면 또 여전히 파는 것이다.< 48>

 

2. “낼부터 우리 파보세. 돈만 있으면 이야, 그까진 콩은.”수재가 안달스레 재우쳐 보챌 제 선뜻 응낙하였다. “그래 보세, 빌어먹을 거 안 됨 고만이지.” 그러나 꽁무니에서 죽을 마시고 있던 아내가 허리를 쿡쿡 찔렀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면 좀 주저할 뻔도 하였다. 아내는 아내대로의 셈이 빨랐다. < 51>

 

3. 열흘이 썩 넘어도 산신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남편은 밤낮으로 눈을 까뒤집고 구덩이에 묻혀 있었다. 어쩌다 집엘 내려오는 때이면 얼굴이 헐떡하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거반 병객이었다. 그러고서 잠자코 커단 몸집을 방고래에다 큉 하고 내던지곤 하는 것이다. < 57>

 

4. 영식이는 수재 앞으로 살같이 달려들었다. 허겁지겁 그 흙을 받아들고 샅샅이 헤쳐 보니 딴은 재래에 보지 못하던 불그죽죽한 황토이었다. 그는 눈에 눈물이 핑 돌며, “이게 원줄인가?” “그럼 이것이 곱색줄이라네. 한 포에 댓 돈씩은 넉넉 잡히지.”영식이는 기쁨보다 먼저 기가 탁 막혔다. 웃어야 옳을지 울어야 옳을지. 다만 입을 반쯤 벌린 채 수재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본다. <중략> 수재는 , 한 포대에 오십 원씩 나와 유!”하고 대답하고 오늘밤에는 정연코 꼭 달아나리라 생각하였다. 거짓말이란 오래 못 간다.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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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낙 비 : 16쪽 분량의 단편소설 >

  가난으로 빚어지는 사회의 부도덕성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새로 이사 온 주인공 춘호는 마땅히 할 일없이, 19살 아내가 날품 팔아 벌어오는 식량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돈 이원만 있으면 놀음판에 가서 한 밑천 잡아 보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매질까지 하며 내쫓는다. 치맛바람으로 팔자를 고친 돈 많은 쇠돌 엄마네로 간다. 쇠돌 엄마는 없고, 그 곳에 와 있던 이 주사에게 몸을 허락한다.

 

  남편한테 매를 맞는 것 보다, 죄의식 없이 이 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고마워한다. 남편에게 부쳐 먹을 농토는 물론 빌려오라고 하는 이원마저 준다고 하니 이 주사를 하늘같은 은인으로 여긴다. 남편은 돈 이원을 빌려 온다고 한 날, 아내를 예쁘게 단장까지 시켜서 내 보낸다. 단지 남편한테 매를 안 맞고 어떠한 짓을 하던,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는 생각은 가난이 가져다주는 안타까운 시대상이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춘호는 자기 집 올봄에 오원을 주고 사서들은 묵새긴 오막살이 집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하였다.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졸라 보았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든 돈 이원만 안 해줄 테여?” < 12>

 

2. 남의 보리방아를 온종일 찧어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다가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그 날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원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도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돈 이원을 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온 동리의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는 벌이를 가진 사람이 없다.< 15>

 

3.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 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욱이 돈 이원을 줄 게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으로 넌지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마웠고 벅찬 짐이나 푼 듯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 22>

 

4. 그래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 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았던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봐!” 하다가, “바루 곧 와, ?”하고 남편은 그 이원을 고이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