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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과맹꽁이, 안해(아내), 형 - 김유정

leepuco 2012. 11. 25. 05:43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은 강원도 지역의 향토성을 느낄 수 있었으나, 처음 대하는 토속어(사투리)들은 이해하기가 다소 힘들었다. 해학적으로 다룬 내용들은 읽는 흥미를 더해 주었다. 작품의 무대가 모두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읽으면서도 어린 시절 내가 겪어온 시골 환경을 자주 떠올리게 했다. 독서하기 좋은 가을에 단풍과 함께 내 마음이 고향에 오랫동안 머물다 온 것 같다.

 

 

< 총각과 맹꽁이 : 12쪽 분량의 단편소설 >

산골나그네의 소설처럼 순박한 시골 총각이 사랑을 하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가슴 아픈 내용이다. 그 시대의 결혼 풍속도를 보여주는 단면일수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농촌 총각들이 겪는 애환은 변함이 없다. 열악한 농지를 도지 받아, 열심히 농사짓는 덕만이는 건달인 뭉태에게서 떠돌이 장사꾼 들병이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에게 말 좀 잘 해줘 장가를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엇이든 값을 자신이 다 지불하겠다고 하며 술과 닭을 대접한다. 그러나 뭉태는 순진한 덕만을 속이고, 자신이 들병이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콩밭에서 둘이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덕만은 화가 치밀어 잿간으로 달려가 큰 돌멩이를 집지만 단념하고 포기한다. 개울가의 맹꽁이도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맹꽁 맹꽁 울어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농촌에서 자라면서 우리가 겪었던 이야기들이 슬프게 한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가혹한 도지다. 입쌀 석 삼. 보리. 콩 두 포의 소출은 근근 몇 섬. 나눠 먹기도 못한다. 본디 밭이 아니다. 고목 느티나무 그늘에 가려 여름날 오고 가는 농군이 쉬던 정자터이다. 그것을 지주가 무리로 갈아 도지를 놓아먹는다. 콩을 심으면 잎 나기가 고작이요 대부분이 열지를 않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일상 덕만이가 사람이 병신스러워. 하고 이 밭을 침 뱉어 비난하였다. < 30>

 

2. “남편을 잃고서 홧김에 들병이로 돌아다니는 판이라데--”“그럼 많이 돌아먹었구먼?”“뭘 나이를 봐야지. 숫배기드라.”“얘 좋구나. 한잔 먹어보자.”이쪽저쪽서 수군거린다. 풍년이나 만난 듯이 야단들이다. 한구석에 앉았던 덕만이가 일어서 오더니 뭉태를 꾹 찍어간다. 느티나무 뒤로 와서 성님 정말 남편 없수?” “그럼 정말이지--”“나 장가 들여주. 한턱내리다.” < 32>

 

3. “어이 술 취해. 소피 좀 보고 옴세.”뻘덕 일어서 비틀거리며 싸리문 밖으로 나간다. 좀 있더니 계집이 마저 오줌 좀 누고 오겠노라고 나가버린다. 덕만이는 실죽하니 눈만 둥굴린다. 일이 내내 마음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다지 믿었던 뭉태도 저 놀구멍만 찾을 뿐으로 심심하다. 그리고 오줌은 만드는지 여태들 안 들어온다. 수상한 일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왔다. < 38>

 

4. 덕만이는 금시로 콩밭을 튀어나왔다. 잿간 옆으로 달려들며 큰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마는 눈을 얼마 감고 있는 동안 단념하였는지 골창으로 던져버렸다.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는 살재두 나는 인전 안 살 터이유--”하고 잿간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제 집으로 설렁설렁 언덕을 내려간다. 그러나 맹꽁이는 여전히 소리를 끌어올린다. 골창에서 가장 비웃는 듯이 음충맞게 -”던지면 -”하고 간드러지게 받아 넘긴다.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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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해(아내) : 15쪽 분량의 단편소설 >

  농사는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에 몰려 어렵게 살아가던 순박한 부부의 삶을 그렸다. 못생겼다고 구박만 하던 남편, 이를 믿고 순종하는 아내가 똘똘이를 낳고 부터는 갑자기 세도가 당당해 진다. 그 후로 부부간의 다툼은 계속되지만, 둘 사이는 더 좋아진다. 생활이 궁핍하게 되자 아내는 들병이가 되겠다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고, 남편은 밤마다 아내에게 소리연습을 시킨다.

 

  이러한 것을 눈치 챈 아랫마을 사는 뭉태라는 놈은 아내를 농락한다. 나무를 팔러 삼 십리 눈길을 다녀오다가 남편은 술집에서 뭉태와 술을 먹으며 취해서 웃고 있는 아내를 본다. 아내를 때린 후에 업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들병이를 시킬 수는 없고, 아들 열다섯만 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무리가 된다. 이러한 어려운 삶은 곧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시대상인 듯싶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우리마누라는 누가 보든지 뭐 이쁘다고는 안 할 것이다. 바로 계집에 환장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 하나 아무리 잘 고쳐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하지만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할 황소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져놓으면 고만이지. <중략>가진 땅 없어, 몸 못써 일 못하여,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줄 테냐. 하니까 내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아두자 하는 것이지. < 215, 첫머리 >

 

2. 똘똘이를 내놓고는 갑자기 세도가 댕댕해졌다. 내가 들어가도 네놈 언제 봤냔 듯이 좀체 들떠보는 법 없지. 눈을 스스로 내려 깔고는 잠자코 아이에게 젖만 먹이겠다. 내가 좀 아이의 머리라도 쓰다듬으며 이 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둬, 왜 깨 놓고 싶은감.”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 217>

 

3. 이런 기맥을 알고 년을 농락해먹은 놈이 요 아래 사는 뭉태 놈이다. 놈도 더러운 놈이다. 우리 마누라의 이 낯짝에 몸이 달았다면 그만함 다 얼짜지. 어디 계집이 없어서 그걸 손을 대구. 망할 자식 두. 놈이 와서 섣달 대목이니 술 얻어먹으러 가자고 년을 꼬였구나. < 227>

 

4. 너는 들병이로 돈 벌 생각도 말고 그저 집안에 가만히 앉았는 것이 옳겠다. 구구루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몸 성히 있다가 연해 자식이나 쏟아라. 뭐 많이도 말고 굴 때 같은 아들로만 한 열다섯이면 족하지. 가만있자. 한 놈이 일 년에 벼 열 섬씩만 번다면 열다섯 섬이니까 일백오십 섬. 한 섬에 더도 말고 십 원 한 장씩만 받는다면 죄다 일천오백 원이지.<중략> 그런 줄 몰랐더니 이년이 뱃속에 일천 오백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렇게 따져도 나 보담은 낫지 않은가. <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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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쪽 분량의 단편소설 >

  어렵게 살았던 우리 부모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모아 여유가 생겼지만, 가난이 무서워 절약하며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필요한 때에도 전혀 돈을 쓸 줄 모르는 절약은 자식들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맏아들 형은 잘 못 된길로 들어선다. 포악해져 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집안에서 주인공 막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지켜만 볼 뿐이다.

 

  효자였던 형은 아버지의 지나친 절약에 의해 불효자가 되고 가정은 험악한 분위로 변해 형제간의 우애마저 저버리는 슬픈 이야기다. ()가 결코 행복을 가져오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다. 작가의 짧은 생애 동안의 소개한 단편소설 9편 외에도 가을, 심청, , 노다지, , 떡 등 총 30여 편이 된다. 단편이기에 부담이 적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 책 속의 주요 글, 구절을 정리해 보면 -

1. 효자와 불효를 동일시하는 나의 관념의 모순도 이때 생긴 것이었다. 형님이 아버지의 속을 썩였다고 그가 애초부터 망골은 아니다. 남 따르지 못할 만치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에게는 토지가 많았다. 여기저기 사면에 흩어진 전답을 답품하랴 추수하랴 하려면 그 노력이 적잖이 드는 것이었다. 병에 자유를 잃은 아버지는 모든 수고를 형님에게 맡기었다. < 358>

 

2. 아버지의 병환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다시 장가를 들겠다는 그 필요를 말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정색하여 아들의 낯을 다시 한 번 훑어보더니 간단히 안 된다 하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안 된다 하였다. 아버지도 소싯적에는 뭇사랑에 몸을 헤었다마는 당신은 빠땀 풍, 하였으되 널랑은 바람 풍하라 하였다. < 361>

 

3. 병에 들어서도 나는 데 없이 파먹기만 하는 건 망조라 하여 조석마다 칠 홉씩이나 잡곡을 섞도록 분부하여 조 투성이를 만들었고 혹은 죽을 쑤게 하였다. 그리고 찬이라도 몇 가지 더 하면 그는 안자시고 밥상을 그냥 내보내고 하였다. 이렇게 뼈를 깎아 모은 그 돈으로 말미암아 시집을 보낼 적마다 딸들의 신세를 졸였고, 또 마지막엔 아들까지 잃었다. < 364>

 

4. 허리를 못 쓰고 드러누워 느끼며 냉수 한 그릇을 나에게 청할 제 나는 애매한 누님을 주리를 튼 형님이 극히 야속하였다. 실상은 삼촌댁이나 셋째 누이나 그들 중에 그 돈을 건넌방 다락 복고개를 뚫고 넣었으리라. 고 생각은 하였다마는 나는 입을 다 물었다. 만약에 토설을 하는 나절에는 그들은 형님 손에 당장 늘어질 것을 염려하여서이다. <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