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서 은퇴 후 미국여행 다녀온 지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무엇을 해보려 이것저것 생각만 하다가 시간만 보냈다. 그러던 중 11월말 아들이 대기업 취직시험에 최종합격하여 내년 1월5일 첫 출근을 한다는 낭보는 내가 새로운 직장이라도 구한 것처럼 기쁘다. 이러한 기쁨을 가족이 함께 하기 위해 새해를 따뜻한 곳에서 보내자고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다.
여행지는 필리핀 마닐라로 하고, 작년에 사업차 온가족이 가서 정착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동생을 위로도 하려고 한다. 물론 아직 정착하지 못해서 패키지 여행상품을 택했다. 동생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것을 물으니, 그곳은 날씨가 덥지만 내일이 신년이기에 떡국을 먹고 싶은 모양이다. 출발 며칠 전 가래떡 한말을 뽑아 여행 가방에 분산하니 부피도 크지만 무겁기도 하다.
- 입 출 국 -
인천공항에서 여행자 미팅이 오전 7시로 온가족이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부지런을 떨었다. 수속 절차를 받은 후 9시에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마닐라를 향하여 출발했다. 여행인원은 너무 단조로워 우리가족 4명과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젊은 부부 4명에 기업체 임원이라고 하는 젊은 남성 1명해서 모두 9명이다. 비행시간은 3시간50분 소요되어, 시차 1시간 감안할 때 현지시간 11시50분에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정확하게 도착한다. 인원이 적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젊은 여성가이드를 만났다.
- 지 리 와 기 후 -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7천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로 면적은 약30만㎢(남한의 약3배)이고, 인구는 약 8,280만 명, 언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를 쓰고 있다. 국민의 80%가 가톨릭 신자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가톨릭 국가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30여분 소요된다.
마젤란(1480-1521)은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스페인을 출발해 남아메리카를 순항하던 중 1521년 3월16일 필리핀을 발견한다. 그해 4월 세부섬 가까이 위치한 막탄섬에 스페인 군대를 끌고 와서 점령한 뒤 세부지역의 왕과 원주민들에게 가톨릭을 전파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여행지는 필리핀이 되었다. 그 이후 30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어도 이곳 국민들은 스페인에 대하여 우호적이고 감사하고 있다.
이만큼 성장은 스페인 덕으로 생각 한다니, 우리나라가 한때 일본의 식민지로 일본에 대해 생각하는 감정과는 차이가 많다. 공항에서 느끼는 날씨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여름 날씨로 모두가 반팔 옷차림으로 바뀐다. 최저기온이 22도, 최고는 30도 이상의 아열대성기후로 일 년 내내 여름이다.
- 숙박 과 음식 -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3일 동안 머무르게 될 하얏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늦게 잠을 청하니 밤새 이어지는 신년 자축 폭죽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숙소의 아침 뷔페는 음식종류도 많고, 맛이 있는 수준급이다.
주로 저녁식사는 한인식당으로 무난한 편이었고, 둘째 날 저녁식사는 한인이 경영하는 시 푸드 전문점으로 생선회와 해물 탕이 나왔는데, 점심에 못 먹은 것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일행 중 혼자 온 회사 임원은 독자 행동으로 없고, 가족과 함께 온 젊은 아버지는 술을 못한다. 안주가 좋았지만, 아이들과 간단하게 끝내야 했다.
점심식사는 주로 현지식인데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특히 팍상한의 점심은 닭고기와 생선 튀김으로 맨밥만 몇 숟가락만 들었고, 따가이 따이의 점심은 불난로 요리라 하는데 실망했다. 음식은 소고기 도가니 수육 같은데, 비위가 맞지 않아 먹을 수가 없다. 과일 노점상에서 산 파인애플로 배를 채웠다.
- 마 닐 라 ( Manila ) -
도시의 첫인상은, 자동차의 매연과 오래된 건물들로 그러한지 마닐라 만의 바다를 끼고 있는데도 맑지가 못하고 회색빛이다. 도심 교통체증이 심하여 중간 중간 서있을 때마다 걸인들이 차창으로 손을 내밀며 구걸을 청한다. 가이드는 일체 응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한곳에서 응해주면 여기저기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어 교통이 완전 마비가 된다 한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나!’하는 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릿고개 시절 비율빈하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나라였던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시아에서 제일 잘사는 선진국으로 인식 되었는데, 그 후 지도자를 잘못만나 독재와 부정으로 부패가 되어 오늘날 아주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
국민소득이 40-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한다. 지도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며, 지도자의 선출을 잘해야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잘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한 반면 못사는 사람들은 빈약해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크다.
- 리잘 공원(Rizal Park) -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 호세 리잘(1861- 1896)을 기리는 공원이다. 이 나라의 독립의 아버지(투사)인 리잘은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 단체인 카티푸난을 일으켜 12월 여기서 처형 당 했으며 이곳에 잠들어 있다. 총살당하는 장면을 재현한 조각상을 보자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마닐라에서 유일한 대규모 공원으로 수목도 잘 가꾸어져 있고, 근엄한 군인들이 공원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이 찾아 휴식을 즐긴다. 지금도 리잘의 생일과 사망한날을 기리기 위하여 공원에서 기념식을 가진다. 리잘이 했다는 말 ‘죽음 앞에 자신을 국가에 바친다.’라는 말을 암송해본다.
-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
공원 옆에 스페인들이 지은 성곽인 군대의 본부였던 요새로 이동한다. 바다를 굽어보고 있어서 침략자들을 향해 포를 발사할 수 있는 방어진지 역할을 했다. 스페인과 일본군 점령시절 많은 필리핀 영웅들이 투옥되거나 살해된 지하 감옥과 고문실은 당시 악몽을 상기 시킨다.
지금은 폐허로 바뀌었지만, 영웅 호세 리잘이 끌려간 발자국을 그대로 표시해 놓은 것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요새 안쪽에 리잘의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어 관람할 수 있고, 요새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유럽식 건물들과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다.
- 마닐라 베이(Manila Bay) -
구시가지 마닐라에서 가까운 거리이다. 가는 도중 한 시대를 좌지우지 하였다는 이멜다 기념관이 지금은 공연장으로 쓰인다는 것을 보고 인생 무상함을 느낀다. 바닷가에서 보니 건너편으로 조금 전 떠나온 마닐라 높은 빌딩이 아름답게 보인다.
지금시간이 저녁 무렵으로 아직 밝아서 크게 볼거리가 없었고, 오늘이 연말이라 폭죽을 팔고 있는 행상들이 많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밤이 깊어지면 이곳은 해안가를 따라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진다.
- 팍 상 한 폭 포 -
2004년 새해를 외국에서 맞이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새해는 온가족이 모두 화목하고 건강하게 보내기를 기원하며 일정을 시작한다. 첫 일정은 세계 7대 절경중 하나이고, 여명의 눈동자 및 지옥의 묵시록 촬영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폭포이다.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약2시간 소요되는 거리의 라구나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랜 시간 끝에 폭포를 맞으며 소원을 빈다는 곳에 도착했다. 배를 타기위한 선착장 겸 음식점에는 간단한 샤워장이 있어 폭포를 맞을 준비로 옷을 갈아입는데, 물론 다녀와서 샤워도 이곳에서 한다. 좁고 긴 바나나 모양의 방카라는 보트를 여행객 2명, 사공 2명이 앞뒤로 탄다. 처음에는 보트 여러 개를 줄로 연결하여 큰 강까지 모터보트로 유인하여 인도한다. 10분쯤 지나면 끌어주던 끈을 치우고 두 명의 사공이 노를 저어 올라간다.
강 상류를 오르면서 양쪽 계곡에 우거진 열대림의 경관은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이다. 점차 강폭은 좁아지고 수심은 얕아진다. 자갈, 바위 등이 있어 배가 바닥에 닿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배를 잡고 발로 밀며 끌어당기며 올라간다.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가만히 앉아 있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다른 직업보다 좋은 것은 반나절만 일하면 하루 생활할 수 있는 수입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1시간쯤 가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폭포 앞 연못에 도착해서 원하는 사람들만 뗏목위에 줄을 맞춰 앉으면, 안내하는 청년들이 연결되어 있는 줄을 잡아당겨 20m 절벽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밑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우리 가족은 누구하나 망설임 없이 뗏목위에 올랐는데 내가 제일 앞줄에 앉았다. 20여명이 함께 탄 뗏목이 폭포에 가까이 다가서는데 떨어지는 소리와 물보라가 옷을 적시면서 겁이 난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앞줄에 앉아 더욱 세찬 물줄기를 맞아서인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다. 폭포를 맞으며 소원을 빌면 이루 워 진다는데, 그 위용이 물 폭탄 수준으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강을 내려오는 것은 쉬운 일로 사공은 여행객들의 기분을 맞추기에 바쁘다.
- 따 가 이 따 이 -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약 64km 떨어져 있는 분화구로 해발 700m의 고지에 위치하여 기온이 평균 2도정도 낮아, 마닐라 시민들의 피서지가 된다. 가는 길옆은 파인애플 재배단지가 크게 조성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는 열대과일을 파는 조그마한 가게들이 많다. 열대과일의 향긋함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이드가 한 가게에서 우리가 시식할 열대과일을 사자, 일행들도 추가로 저렴하게 구입했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의 원산지가 이 나라이며, 망고도 많이 재배된다. 역시 과일의 맛은 망고이다. 초록색 망고는 잘라서 소금에 찍어 먹어야 맛있고, 노란 망고는 그냥 먹어야 맛있다.
화산 분화구 안에 또 다른 활화산을 보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배를 타기 위하여 분화구 안 물이 고여 있는 선착장까지 내려가기 위하여 많이 봤던 지프니로 갈아탔다. 비탈 내리막길을 10여분 털털거리며 내려가는데, 중간에 고장이라도 날 것 같아 불안했다. 분화구 안이 어찌나 큰지 바다 같은 호수를 연상케 한다. 바람에 파도처럼 물보라가 치기에 각자 비닐 우비를 입고 배를 탄다. 30여분을 통통거리며 배가 움직여서 따알화산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따알 화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조랑말을 타야한다. 걸어가고 싶어도 이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하여 정부에서 관광정책으로 정해졌다니 어쩔 수 없다. 마부가 옆에 따라 오기도 하고 같이 말에 오르기도 하여 안내 하는데 작은 말이 불쌍해진다. 좁고 비탈진 길을 오르다 보면 흙먼지도 뒤집어쓰고 엉덩이도 아픈 것이 불편하다. 화산 정상에 도착하면 분화구가 호수같이 느껴 지고 그 가운데 작은 화산이 있으며 분화구 몇 군데에서는 하얀 수증기를 내뿜는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바라보는 화산 속 화산의 전경은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코코넛 열매의 시원한 맛은 갈증을 풀어준다. 다시 조랑말을 타고 내려오는 길의 마부는 어제 팍상한에서의 사공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가이드가 이야기 하는 수준의 팁을 주면 끝나야 하는데, 계속 눈치를 보면서 더 요구한다. 그러한 것을 겪으면 기분 좋게 구경하고도 마음이 아프다. 어렵게 사는 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관광객 스스로가 그런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고 생각되니 자제해야겠다.
- 골 프 장 -
따가이 따이를 떠나는데 인근에 많은 골프장들이 보인다. 내일은 떠나는 날로 골프를 못치고 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동생이 여기 있으니 언제나 다시 올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한다. 저렴한 비용에 여유를 가지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하는데 패키지여행의 한계를 느낀다.
- 농 촌 지 역 -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분위기는 야자수 나무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농촌과 비슷했지만, 생활하고 있는 마을의 주택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길거리 농촌 마을의 주택들을 또다시 보아도 가난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 대 중 교 통 수 단 -
이동을 하면서 보니 서민들의 교통수단 이라고 하는 지프니 자동차가 눈에 많이 보인다. 마닐라 시내 차량의 절반을 차지 할 정도로 많은 이차는 필리핀 내 차량공작소에서 적어도 20년 이상 된 자동차 부속품과 버스엔진 등으로 만든다. 차 외관에 여러 모양의 장식품등을 부착하여 장난감 차로 느낄 정도이다.
18명이 정원인 이 차는 정기적 노선이 있기는 하지만 승객이 원하면 어디든지 내리고 탄다. 계기판이 없거나 있어도 작동이 안 되지만, 속도는 시속 40km-80km까지 낼 수 있다. 택시나 에어컨 버스보다 요금이 저렴하여 7페소(한화 약140원)이다.
- 조 촐 한 자 축 연 -
동생과는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해서, 숙소로 돌아 와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치안이 안 좋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니, 감히 아이들과 함께 밤거리를 나갈 수 없다. 호텔 내에 있는 칵테일 바에서 아이들이 맛있다는 칵테일을 이것저것 맛보며 더불어 맥주를 마셨더니 기분 좋게 취한다. 밤11시까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아들의 취직을 다시 한 번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 동생 가족 과 상봉 -
7시30분경 동생부부와 조카가 호텔로 찾아왔다. 호텔 룸에서 이산가족이 만난 듯 반가운 재회와 동생이 사온 맥주와 우리가 준비한 소주로 간단히 송년 파티를 했다. 새해를 동생 가족과 함께 필리핀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맞이하였다. 마지막 날 저녁은 격조가 있는 한인식당 마산 집을 찾았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서울 한복판의 일식집 분위기와 비슷하다.
제주에서만 보았던 다금바리 회를 시켜놓고 동생과 함께 술 한 잔씩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이곳에 온지 1년여 되었는데, 오자마저 동생을 이곳으로 오게 한 사람한테 사기를 당하여 금전적 손실을 많이 입었다 한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나와서까지 서로 돕지 못하고 이용만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열대지방의 생선회는 고기가 푸석푸석 한 것이 우리나라의 쫄깃쫄깃한 맛은 없다.
- 진 주 쇼 핑 몰 -
동생이 차를 가지고 와서 우선 마닐라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는 부자들의 동네로 이동을 했다. 처음 들린 곳은 진주 쇼핑몰로 조그마한 진주가게가 수없이 많이 늘어서 있는데, 가공이 안 된 상태로 도매 및 소매를 한다.
진주 몇 개를 동생의 흥정으로 구입하였다. 쇼핑몰을 나오니 한여름 날씨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었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야외무대 장식이 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다. 가톨릭 국가인 이곳은 크리스마스 축제가 1월말까지 이어지는 최대의 축제기간이라 한다.
- 그린 힐 지역 -
동생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를 찾았다. 총기 소지가 허락되는 나라여서 치안이 좋지 않다더니, 아파트 입구부터 보안장치와 경비가 삼엄하다. 우리나라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와 흡사하여 고층의 옥상에는 수영장도 있다. 넓은 평수의 복층을 임차하여 쓰고 있었다. 가사를 도와주는 필리핀 도우미를 두 명이나 쓰고 있는데, 한 달에 한 사람 월급이 6만원이니 인건비가 무척 싸다.
조카 녀석의 ‘우리 엄마는 왕비다’라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최근 외국 영어 연수를 많이 떠나는데, 그들을 단기간 동안 이곳 생활에 적응시키며 영어 연수를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가르치는 사업을 한다. 외국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하지만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집을 나왔다.
- 성 인 클 렵 -
매일 아침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는 일행 중 혼자 온 회사 임원이라는 사람이 자랑하던 성인클럽 유니버설이 궁금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아이들을 호텔로 먼저 가게하고, 동생과 함께 숙소에서 가까이 있는 클럽을 찾았다. 여행객들로 만원을 이룬 대형 홀은 조명과 음악 그리고 무대에서 전라의 무희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색 지대였다.
일본사람들이 한때 우리나라를 기생 관광국이라고 하여 문제가 되었던 때가 생각난다. 저렴한 비용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젊은 남자들이 많이 찾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무희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각각 색다른 동작으로 춤을 관능적으로 추고 대기실 쇼 윈도우에 앉아서 대기한다.
무희가 필요한 손님들은 이들 중 선택하여 좌석에 같이 술을 마시거나 외박을 한다고 한다. 숨쉬기 거북할 정도의 담배연기, 술 취한 사람들의 흐트러진 몸짓, 무대 무희들에게 얼이 빠진 눈빛 등의 분위기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호기심만 해결하고 동생과 헤어져 내일 일정을 위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 기 념 품 상 점 -
어제 혼자 늦게 들어와서 아침에 일어나는데 피곤했지만 아무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오후에 떠나기에 오전에는 쇼핑만 한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인원이 적은데다 그것도 두 가족에 아저씨 한명이니 가이드는 흥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처음 들린 곳은 해산물 전복을 판매하는 곳으로 값이 저렴하고, 냉동판매로 보온 박스에 포장을 해준다. 다음은 진주를 비롯한 잡화 면세점이다. 진주는 동생과 함께 어제 밤 구입해서 기념품 몇 가지만 샀다.
- 마닐라 여행을 마치면서 -
3박 4일(12. 31 - 1. 3)의 일정을 마치고 현지시간 오후 1시20분에 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에 6시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혼자 온 사람이 공항에 차를 주차해뒀는데 집의 방향이 갔다고 집까지 태워준다. 마지막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던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하니 모든 순간이 즐거웠고, 동생의 사는 모습까지 보고 와서 무척 기뻤던 여행이었다.
2004. 1 월 여행을 정리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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