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지척에 두고 간다간다 하면서 못 갔던 광릉(光陵)을 간다. 광릉하면 초등학교 시절 자연시간에 배운 크낙새가 떠오르면서, 인근을 지날 때마다 온다고 한 것이 수십 년이 걸렸다. 하루 입장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사전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며칠 전 예약을 하고, 아내와 함께 가을 정취를 느끼고자 출발하였다.
수목원 이름이 광릉수목원에서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고, 너무 늦게 오다보니 어느덧 옆에는 귀여운 손자가 따라오고 있다. 오늘따라 노부부가 된 모습이 날씨만큼이나 쓸쓸함을 가져다준다. 수개월 전 손자를 데리고 아산 ‘외암 마을’에 다녀온 후 두 번째 동행하는 나들이다. 그때는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만 다녔는데, 오늘은 제법 잘 걸어 따라오는 것이 많이 성장했다.
퇴계원에서 일동 가는 4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국도에서 벗어나 지방도 왕복 2차선으로 들어섰다. 광릉 숲이 시작되는 듯 가로변에 있는 오래된 수종의 굵은 나무들이 일렬로 반가이 맞아준다. 광릉을 지나서 나타난 국립수목원 정문은 목조건물로 숲속에서 운치를 더 해 준다. 정문과 매표소, 방문자의 집 등은 처음 오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이 곳 수목원이 위치하고 있는 광릉 숲은 1468년 조선조 제7대 세조 대왕 능림(陵林)으로 지정되어 500여 년간 엄격히 보호 관리되어온 국내 최고의 산림이다. 1913년부터 임업시험림으로 지정,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일반인에게 개방, 1999년 5월24일 새로이 발족한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관리 하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일 입장인원을 5,000명으로 제한하여 수목원 자체는 붐비지 않는다. 삼림욕하기 좋은 것은 물론이고, 숲 사이로 나있는 산책길은 조용하고 가을정취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린 손자가 애써 표현하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손잡고 가는 길은 손자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넘치는 길이다. ‘하부지’하며 부르는 손자의 부름이 할아버지가 된 것을 대외적으로 알린다.
할아버지가 된 것이 처음에는 듣기가 어색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다. 그만큼 세월의 변화에 내 자신이 순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손자와 시간을 가져보니, 자식들 키울 때는 바빠서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새삼 느낀다. 부디 이곳의 곧게 자란 나무들처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책길을 지나 난대식물원 앞에서 원색 옷을 입은 어린이집 아이들의 행렬을 만나게 된다. 같은 노란 상의를 입은 손자는 그 행렬 속으로 들어가 대화도 안 되는 말로 중얼거리며 즐겁게 구경하는 것이 아닌가! 일부 아이들은 자기네 대열에서 밀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예뻐하며 귀여워한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뒤를 따라 다녔다.
안내 코스를 보면서 길을 걷다보면 각종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는 옆에 나무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는데, 종류가 많다보니 대부분 처음 보게 되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이 하나의 숲을 만들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아직 단풍을 보기에는 이르고, 이제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혹시나 크낙새를 보게 되나 기대도 했지만 볼 수가 없다. 광장 옆에 크낙새를 볼 수 있다는 나무가 있어 가보았더니 나뭇가지에 크낙새 모양을 한 새 조각을 달아놓고 스피커로 새 울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실제 새가 날아들고 나가는 것이 있어 보니 그것은 까치이다.
수목원의 면적이 생각만큼 크지 않아 구경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아서 광릉까지 다녀온다. 국립수목원내 광릉이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운 거리에 떨어져 있고 입장도 별도로 한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홍살문이 나오고, 왼쪽은 세조(世祖) 능(陵)이고, 오른쪽은 정희왕후(貞熹王后) 능이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세조(1455-1468:재위, 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윤씨가 묻힌 곳이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明敏)하여 학문과 무예도 뛰어났다. 처음은 진양대군 이었으나 성장하여 수양대군으로 고쳐 봉해졌다. 세종에 이어 문종이 3년 만에 승하하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자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 원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다.
14년 재위기간 동안 많은 치적을 남기었고, 만년에는 왕위 찬탈에 대한 고뇌에 싸여 불문(佛門)에 귀의하면서 둘째아들 예종에게 왕위를 전위한다. 정희왕후는 덕종, 예종, 의숙공주(2남1녀)를 두었다. 맏아들 덕종이 20세에 요절하고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 만에 승하하자, 덕종의 둘째아들 성종이 13세에 즉위하자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다.
오늘 아내와 손자 셋이서 가진 가을 나들이는 비록 크낙새는 보지 못했지만, 삼림욕을 즐기면서 손자와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덕종의 후손이기 때문인지, 역사의 기록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정희왕후’의 ‘능’을 보면서, 어려운 시기에 왕조를 잘 이끌어온 왕후인 듯하다. 우연히 역사공부도 함께 한 ‘일석이조’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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